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진실과 상관없이 오해를 받을 때가 있습니다. 고려 충렬왕 때 예문관제학인 추적(秋適)이 엮은 명심보감에는 이런 경구가 있습니다. 瓜田不納履 과전불납리 李下不整冠 이하부정관 오이 밭에서는 신을 고쳐 신지 말 것이며, 자두나무 아래서는 갓을 고쳐 쓰지 말아야 하노니...! 땅바닥 오이 밭에서 신을 [...]
조선 영정조 태평성대 시절 문신인 성대중(成大中)은 자신의 인생관을 이렇게 말합니다. 眼前無不好人 肚裏無不平事 是爲平生至樂 내 눈 앞에 마땅히 미운 사람 없고 내 가슴 속에 그리 불편한 일 없는 것, 이것이 내 평생 지극한 즐거움이리니. 세상에 죽도록 밉거나, 가슴에 사무치는 일 없이 [...]
조선 성종 때 문인 성현(成俔)은 출세와 성공만이 인생의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합니다. 그의 문집인 허백당집에 보면 인생에서 중요한 두 가지 풍류로 강호지취(江湖之趣)와 소산지태(蕭散之態)를 꼽습니다. 강과 호수에서 아름다운 인생의 즐거움을 느끼고, 하릴없이 한가히 발길 가는대로 살아가는 인생의 모습을 [...]
장기를 둘 때 졸을 포기하고 차를 살리는 수를 주졸보차(丢卒保車)라고 합니다. 전체 국면의 이익을 위해 때로는 부분적인 이익을 버려야 한다는 말로,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라는 뜻입니다. 낚시꾼이 고기를 잡기 위해 미끼를 아끼지 않듯, 장사꾼이 영리를 위해 고객들에게 ‘맛보고 가세요’ 라고 하는 [...]
춘추전국시대 편작(扁鵲)은 죽은 사람도 살리는 명의로 알려졌지만 그의 의술의 핵심은 예방의학이었습니다. 편작이 제나라에 갔을 때 제환공(齊桓公)의 안색을 보고 병이 있으니 지금 치료하면 쉽게 고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환공은 의사는 괜한 병을 만들어 이익을 꾀하려는 술책이라며 무시하였지요. 편작의 충고를 외면한 [...]
百練絲能白 백련사능백 千磨鏡始明 천마경시명 老夫猶有意 노부유유의 年少肯虛生 연소긍허생 ‘백 번은 삶아야 실은 희게 되고 천 번은 갈아야 거울이 비로소 밝아지노니, 나처럼 늙은이도 여전히 배움에 뜻을 두고 사는데 젊은 그대가 어찌 허송세월의 생을 살고 있는가.‘ 퇴계 이황이 제자 김응순에게 보내는 시로 [...]
秋陰漠漠四山空 추음막막사산공 落葉無聲滿地紅 낙엽무성만지홍 立馬溪橋問歸路 입마계교문귀로 不知身在畵圖中 부지신재화도중 ‘가을 구름 잔뜩 끼어 사방의 산들 쓸쓸하고 소리 없이 지는 낙엽으로 땅 가득 붉네 냇가 다리에 말 멈추고 돌아갈 길 물으니 내 몸이 그림 속에 들어가 있는 듯하구나.' 조선 건국에 결정적 역할을 한 [...]
전국시대 초나라 대신 장신이 하루는 임금인 양왕에게 말했습니다. "전하께서 총애하는 주후와 하후, 언릉군과 수근군 네 사람은 모두 음흉하고 방탕해 국가 재정을 낭비하는 주범들이니, 나라를 위해 하루속히 그들을 멀리하소서." 그러나 양왕이 화를 낼 뿐 그의 간언을 외면했고, 얼마 뒤 진나라가 초를 침공해 [...]
고려와 조선시대 왕권을 견제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은 단연 상소였습니다. 그래서 왕의 중요한 업무 중 하나가 선비들이 올린 상소를 읽는 일이었습니다. 상소 중에도 가장 무서운 상소가 지부상소(持斧上疏)입니다. ‘도끼를 옆에 놓고 상소를 올린다’는 이 말은 신하로서 충언이 틀리다며 받아들일 수 없다면 이 [...]
말이 좋아 프리랜서지 글품팔이가 없을 때는 나도 모르게 수심에 빠집니다. 한숨을 쉬고 있는 목식에게 맹자께서 따끔하게 질타하시네요. 君子無一朝之患也 “군자는 어느 아침나절에 왔다가 사라지는 근심을 가져서는 아니 되느니라.” 근심을 한다고 문제가 해소되는 것은 아닐진대, 근심거리에 빠지느니 뭔가 다른 수단이나 방법을 찾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