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새로운 한 주의 시작을 공자의 일갈로 열게 됩니다. ‘不患無位 불환무위 患所以立 환소이립 不患莫己知 불환막기지 求爲可知也 구위가지야 지위가 없음을 걱정하지 말고 지위에 설 것을 걱정하며, 알아주는 이가 없음을 걱정하지 말고 알려질 만하기를 구해야 하느니라.‘ 능력있는 사람이 기회가 없어 허둥거리며 괴로워하는 [...]
한 맹인이 머리에 물동이를 이고 손에 등불을 든 채 걸어오자 마주오던 사람이 물어 보았습니다. “앞을 볼 수 없는데 등불을 왜 들고 다닙니까?” “당신이 제게 부딪히지 않기 위해서지요. 이 등불은 내가 아닌 당신을 위한 것입니다.” 일본의 부모들은 자녀에게 남에게 폐를 끼치는 [...]
무릇 욕심은 부릴수록 더 부풀고, 미움은 가질수록 더 거슬리며, 원망은 보탤수록 더 분합니다. 아픔은 되씹을수록 더 아리고, 괴로움은 느낄수록 더 깊어지며, 집착은 할수록 더 질겨집니다. 칭찬은 해줄수록 더 잘하게 되고, 정은 나눌수록 더 가까워지며, 사랑은 베풀수록 더 애틋해집니다. 몸은 낮출수록 [...]
누구나 살면서 한번쯤은 상처를 겪습니다. 때론 누군가에 주기도 하고, 때론 누군가로부터 받으면서 말입니다. 상처를 줬다면 받은 사람이 있을 것이고, 받았다면 준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줬으면 받은사람에게 "미안하다" 안아주면 될 것이고, 받았으면 왜 받았는지 이유를 헤아려주면 그다지 큰어려움 없이 잘 견딜 [...]
싱그런 숲의 정기에 둘러싸여 논어(論語) 원전 속 공자의 고제(高弟) 증자(曾子)와 대면하고 있습니다. ‘吾日三省吾身 오일삼성오신 爲人謀而不忠乎 위인모이불충호 與朋友交而不信乎 여붕우교이불신호 傳不習乎 전불습호 나는 하루에 세 번 자신을 반성한다. 남을 위해 일을 꾸미되 불충하지 않았는가. 친구와 교제함에 있어 믿음을 잃지는 않았는가. 전수받은 바를 [...]
내가 변하지 않고 남이 변하기를 바라는 것은 글씨체가 나쁘다고 펜을 바꾸는 것과 같습니다. 남이 나를 알아주기 바란다면 내가 먼저 남을 존중하고 인정해주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남에게 강요하는 태도도 내가 오만한 까닭이고, 나는 귀한 대접을 받고 싶어 [...]
늙은 말의 지혜라는 뜻의 노마지지(老馬之智)라는 옛 말은 '한비자(韓非子)' 세림(說林)편에 나옵니다. 춘추시대 제나라 환공(桓公)이 어느 해 봄 명재상 관중(管仲)과 함께 고죽국을 정벌했습니다. 그런데 전쟁이 의외로 길어져 그 해 겨울에야 끝이 났고, 혹한 속에 지름길을 찾아 귀국하려다 그만 길을 잃고 맙니다. 전군이 [...]
20세기 형이상학을 완성시킨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 (Gilles Deleuze)'와 인터뷰 중입니다. "나처럼 해보라고 말하는 사람에게서는 아무 것도 배울 수가 없다. 나와 함께 해보자는 사람만이 제대로 된 스승이다. 자고로 가르침은 자신의 길이 옳다고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갈 길을 함께 열어가는 [...]
치악산사에서 맞은 휴일아침, 목식이 아직 약관의 나이일 때, 절연(絶緣)의 상심으로 찾았던 이곳서 큰스님과의 첫만남이 생각납니다. 어느날 소포가 왔길래 엉겁결에 받아 전해줬더니 큰스님이 풀어놓으라 손짓합니다. 노끈으로 촘촘히 포장됐는지라 가위를 찾아 포장된 끈을 자르려는데 큰스님이 한 말씀 하십니다. “끈은 자르는 게 [...]
짐짓, 인생의 스승은 책이라 여겼건만 살아 갈수록 그게 아니란 생각이 듭니다. 언제나 나를 가르치는 건, 말없이 흐르는 시간이었습니다. 풀리지 않는 일에 대한 정답도 흐르는 시간 속에서 찾게 되었고, 이해하기 어려운 사랑의 메시지도 거짓없는 시간을 통해서 찾았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흐르는 시간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