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淸河Essay] 당신이 고독할 때Ⅰ
박완규 주필
당신이 무척 고독하다고 느낄 때
눈밭에 헐벗고 서 있는 나무를 보라.
이무것도 가진 것 없이 사라질
순결의 눈송이를 화관처럼 이고
움츠리고 서 있는 나무를 보라.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 헐벗음의 안에는
봄이면 피어날 새순의 생명력을 감추고
여름이면 무성하게 키울 잎의 화려한 향연을 숨기고
가을이면 훌훌 털어버릴 수 있는
세속의 이야기를 지니고 서있는 것이다.
겨울나무의 고독은 안으로 꿈꾸는 시간의 배회이다.
살아가는 동안 당신이 고독할 때면
추운 겨울을 헐벗고 살아가는 나무가 되는 것이다.
손마디에 피멍이 들도록 일을 하고 돌아왔을 때
쓸쓸하게 놓여진 밥상 위의 텅빈 남비처럼
따뜻하게 맞아주는 이 없는 벌판의
헐벗은 나무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고독할 때
가슴으로 다가오는 봄날의 눈짓과
뜨거운 여름의 그늘과
낙엽을 떨구며 하직할 수 있는
멋진 벗어버림의 아름다움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당신이 고독할 때,
그것은 인생을 알지 못함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떠나온 순수의 세월이 그리워서 홀로 우는 시간이기에
다가올 세월의 역전을 꿈으로 피워 올림으로써
먼 훗날을 지켜보는 시간이 되는 것이다.
당신이 고독할 때
아침에 유리창에 피어난 성에를 보라.
차가운 밤바람에 꽃으로 막고 서 있는
가냘픈 몸매의 현란한 몸짓을 보라.
성에는 사랑을 잃고 가슴아파 하는 이의
눈물이 얼어붙은 흔적이면서도
아픔을 아름다움으로 승화되어 꽃이 되어 있는 것이다.
눈빛으로만 주고 말았던 첫사랑의 아련한
안타까움은 날이 갈수록 뼈속으로 파고들어
찬바람이 부는 겨울밤을 홀로 밝히게 하고
동이 터오는 아침에야 그것이 진실이었다는
말 한마디의 비명으로 끝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루어질 수 없는 평행선의 사랑인줄은 알지만
그가 다니는 버스정거장에 서서 타고 내리는 승객 틈에
기적처럼 그의 모습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던
견딜 수 없던 열병의 순간도 시간이 가고나면
뒹구는 낙엽처럼 쓸쓸하게 고독의 향기로
남아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고독의 향기도 성에처럼 화려한 꿈의 향연이다.
그의 이마에 놓여있던 조그마한 점 하나도 눈에 선하게 떠오르고,
어쩌다 웃어주던 싱그러운 미소하나도 그대로 눈에 어른거리는
고독의 심연에서 그 때의 사랑이 아름다웠다는
한조각 꽃잎의 기억으로 바뀔 때
그것은 찬바람에 얼어붙은 성에처럼,
꿈꾸는 자의 옷자락처럼,
훨훨 먼 세계로 날아가게 하는
환상의 기차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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