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淸河칼럼>개울가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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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떠나온 고향 시골을 찾을 때마다 느끼는 아쉬움이 있다. 어릴 적 물장구치고 가재잡고 놀던, 맑은 물이 흐르는 개울을 언제부터인가 볼 수 없는 까닭이다.
그 많던 물이 모두 어디로 갔는지 메말라 흔적뿐인 개울에, 그나마 물 흐르는 곳은 온갖 쓰레기에 악취까지 풍기고, 마을 아이들 놀이터요 어른들의 쉼터였던, 추억속의 맑은 개천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버렸다.
세월을 거슬러 보면 개울은 우리에게 더 없이 소중한 공간이었다. 가재나 물고기를 잡기도 하고, 작은 소(沼)에서는 물놀이를 하거나 얼음을 지치며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종이배를 띄우며 꿈을 펼치고, 시름과 화를 달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득한 옛 이야기로 기억될 뿐이다.
쓰레기가 넘치는, 죽은 개울에서 넋놓고 쉬거나 사색할 맛이 나겠는가. 지금의 환경에서 황진이의 시조 ‘청산리(靑山裏) 벽계수야 수이 감을 자랑마라/ 일도창해(一到滄海)하면 다시 오기 어려우니/ 명월이 만공산하니 쉬어간들 어떠리’가 나올 수 있을까. 맑은 개울물 ‘벽계수’를 볼 수 없을진대….
‘당신은 무슨 일로 그리합니까/ 홀로이 개여울에 주저앉아서/ 파릇한 풀포기가 돋아 나오고/ 잔물은 봄바람에 헤적일 때에…/ 날마다 개여울에 나와 앉아서/ 하염없이 무엇을 생각합니다….’ 라는 김소월의 시 ‘개여울’은 말할 나위도 없다.
날마다 나와 앉아 있을 만한 개여울이 없다면,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리는 이런 주옥같은 시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하염없이 주저앉아 있고 싶을 만큼 사람의 발길을 끌어들이고, 꿈과 시름을 함께 실어 띄워보낼 개여울로 돌려놓아야 한다.
오염된 채로 방치하거나 혹은 마구잡이식 개조와 파괴로, 사람과 수많은 생명체의 종적을 멀어지게 한 농촌의 개울을 볼 때마다, 인간이 이기와 편리만 좇다 보니 결국 부메랑처럼 인간 스스로를 망치게 하고 있음에 쓰린 가슴이 먹먹해진다.
각박해진 우리네 심성을 온건하게 되돌리기 위해서도 개울을 살리는 일이 시급하다. 개울을 살리는 일은 근본적으로 녹조의 강과 적조의 바다를 살리는 길이기도 하다. 수많은 개울과 하천을 오염되고 파괴된 채로 두고 4대강만 정비한다고 요란법석을 떨었건만, 강이 제대로 살아났는가.
전국의 모든 개울과 하천이 청산 속 맑은 개울물인 벽계수(碧溪水)요, 옥같이 맑은 물이 넘쳐 흐르는 ‘옥류천(玉流川)’으로 돌아올 날을 고대한다. 벽계수와 옥류천으로 되돌리는 일은 인간의 이기심이 낳은 많은 병폐를 치유하는 첩경에 다름 아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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