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톡스칼럼] 로그아웃에 도전한 주말 열시간

최주미 / 미주 중앙일보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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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일이 그렇다보니 컴퓨터와 스마트폰에 중독 수준으로 밀착되어 산다. 아침에 잠이 깨면 스마트폰을 집어 들어 시간 확인하는 것부터 시작이다. 어제 올린 피드에 사용자 반응이 어느 정도인지를 확인한다. 아침 첫 피드로 올릴 뉴스가 뭔지도 훑어본다. 속보가 있으면 랩탑을 열어서 업로드 해줘야 한다. 이른 시간 피드 하나를 올려두고 집을 나서면 어쩐지 든든하다.

출근하면 왼손으로 가방을 내려놓는 동시에 오른손으로는 컴퓨터 부팅을 한다. 연속 동작으로 가방에서 스마트폰을 꺼내고 충전기에 연결하면서 폰 화면에 새로 뜬 알럿들을 확인한다. 그 사이에 부팅이 진행되어 모니터가 시스템 시작을 알리면 비로소 자리에 앉아 하루를 시작한다. 주5일 매일 아침의 자동화된 루틴이다.

당연히 내 시선은 병풍처럼 앞에 놓인 두개의 모니터와 그 옆에 액세서리처럼 따라붙는 스마트폰 화면을 진종일 배회한다. 사실 나는 천성적으로 ‘비과학적 사고’ 에 머리를 긁적이는 인종인데다가 세피아톤의 구식 아날로그 풍경을 로망으로 품고 사는 사람인데, 어찌어찌 디지털의 망망대해에서 끝없이 노를 젓는 삶을 살게 된 것일까 가끔 망연할 때가 있다. 그럼에도 현재의 나는 자발적 디지털 종속을 부인할 수 없는 몰입 상태에 와있다.

지난 주말에는 이렇게 일주일 내내 무표정한 반건조 인생은 안되겠다 싶어 컴퓨터와 스마트폰과의 24시간 단절을 시도해봤다. 요즘 유행이라는 ‘디지털 디톡스’ 다. 일단 티비를 끄고 랩탑도 치워놓고 스마트폰은 가방에 넣어 지퍼를 잠근 다음 벽장 안으로 차단 – 시킬 때 잠시 망설였지만, ‘진정 접속이 필요하다면 어떻게든 접속된다’ 는 금언을 되씹으며 과감히 문을 닫았다. 그리고 소파에 앉아보니 귀에서 난데없는 이명이 들린다. 밖으로는 고요와 평화가 아닌 무기력한 적막이 밀려든다. 발코니 밖에 오가는 자동차 소리가 유난스레 요란하다.

멍하니 앉아서 ‘최대한 더욱 격렬하게 멍하니’ 앉아있기를 한참, 뻐꾸기 시계를 올려다보니 겨우 십분이 지났을 뿐이다. 책장을 열어서 진작에 사두고 뚜껑조차 열지 않았던 폴 오스터의 소설 한 권을 집어 들어 앉았다. 첫 두세장을 읽다가 문득, 몇 달쯤 전에 트럼프의 반이민정책에 대해 전세계 유명 작가들이 공개 서한을 보냈다든데, 폴 오스터가 참여했던가 궁금증이 일어난다. 폰을 집어 검색 하려다가 멈칫했다. 디지털 디톡스를 시작한 지 겨우 이십분만이다. 나중에 찾아볼 것으로 기록해두자 하면서 다시 폰 메모장을 탭하려다 스톱했다. 오래묵은 수첩 하나를 꺼내 적었다. 폴 오스터 반이민 서명 찾아보기 – 그래봤자 도서관 가서 신문 스크랩을 뒤져볼 것도 아니고 결국 웹에서 구글링이겠지만.

다시 책 속에 몰입하려고 안간힘을 쓰는데 주인공이 뉴욕은 아무리 산책을 해도 늘 새로운 길이 생겨나는 곳이라며 독백하는 장면에 이르자 3년 전 뉴욕 여행길의 고즈넉한 뒷골목들이 떠오르며 폰 안에 저장된 사진들을 찾아보고 싶어지는 나를 발견한다. 아 이건 참!

진저리치며 새삼 깨달았다. 내가 노모포비아(스마트폰에서 떨어져 있는 것을 두려워하는 증세 nomophobia : no-mobile phobia) 인지 디지털중독자인지는 모르겠지만 진정 대책없이 산만한 인간이 되어버린 건 틀림없다는 사실이다. 산만한 집중력과 디지털 중독의 상관성을 수치로 입증할 수는 없지만 체감하는 인과관계는 명백하다. 더구나 외부에서 카톡으로 페북으로 자꾸 불러들여 어쩔 수 없는 체 끌려나가는 접속이 아니라 이건 온전히 자발적 의존증이다. 더 문제다.

결국 그 주말의 디지털 디톡스는, 수년 전 디지털 세계를 벗어나 진짜 인생을 찾은 가족의 이야기로 화제가 되었던 책 ‘로그아웃에 도전한 우리의 겨울’ 에서 천명했던 디지털 디톡스 십계명을 ‘검색’ 하는 것으로 열시간만에 끝이 났다.

디지털 디톡스를 위한 스크린 십(일)계명

1. 따분함을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2. 멀티태스킹을 하지 말지어다.(숙제가 끝나기 전에는 영원히)

3. ‘윌핑’(검색 목적을 잊고 인터넷을 헤매는 것)을 하지 말지어다.

4. 운전 중에는 문자를 하지 말지어다.

5. 안식일에는 스크린 사용을 금할지어다.

6. 침실은 미디어 금지 구역으로 유지할지어다.

7. 이웃의 업그레이드를 탐하지 말지어다.

8. 계정은 ‘비공개’로 설정할지어다.

9. 저녁 식사 자리에 미디어를 가져오지 말지어다.

10. 미디어에 저녁 식사를 가져오지 말지어다.

그리고, 온 마음을 다해 RL(Real Life)를 사랑할지어다.

 

Joomi Choi·2017년 8월 15일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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