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규칼럼] 을미신년 화두는 ‘정상(正常)과 변화(變化)’

박완규 주필

“가는 것이 모두 이와 같구나. 밤낮으로 흘러 쉬는 일이 없구나.(逝者如斯夫不舍晝夜)”

공자가 냇가에 흐르는 물을 보면서 세월의 무상함을 탄식했다는 ‘천상(川上)의 탄(嘆)’은 덧없이 흘러가는 세월과 끊임없이 생성하고 소멸하는 우주의 섭리를 꿰뚫고 있다. 사람들이 쉼표도 없이 어제가 오늘 같고 내일이 오늘과 별반 다르지 않게 흘러가는 세월에 인위적으로 월력이라는 매듭을 지은 까닭은 지난날을 반성하고 새로운 각오를 다지는 계기로 삼기 위함이 아니던가.

한 해가 저물고 새해가 시작될 때마다 사람들은 송구영신(送舊迎新)을 다짐하며 새해에는 지난해와 뭔가 다른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막상 한 해가 저무는 세밑에는 그 동안 다하지 못한 숙제를 되돌아 보며 또 한 해를 덧없이 보냈다는 회오(悔悟)에 젖는다.

그림12-3그래서 어느 시인은 “내일이 오면 오늘보다 조금은 다른 / 무엇이 다가오지 않을까 / 그렇게 그때도 기다렸다 / 그러나 내일은 언제나 만나지지 않았다”고 탄식하기도 했다던가. 을미(乙未)년 새해가 밝은 지 열흘이 넘었지만 왠지 무거운 마음은 쉬 가시지 않는다.

유달리 길고 힘들었던 갑오(甲午) 해를 지워버리고 희망으로 가득한 새해만을 생각하고 싶지만 현실은 우리에게 그런 여유를 주지 못하고 있다. 우리 사회 안팎에서 아직도 현재진행형인 갈등과 비정상으로 인한 극심한 혼미와 분열상이 우리의 가슴을 짓누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해는 떠올리기도 싫을 만큼 고통, 슬픔, 충격의 연속이었고, 그 소용돌이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세월호 참사의 절규가 아직도 귓전을 때리고, 끔찍한 병영난사로 군대에 자식 보낸 부모들은 불안에 떨고 있다. 땅콩 한 봉지 때문에 비행기에서 쫓겨난 승무원, 아파트 주민의 폭언에 자살한 경비원, 오체투지와 고공농성중인 비정규직과 해고 노동자 등 이 시대 ‘을(乙)’과 ‘미생(未生)’의 형상이 도무지 지워지지 않는다.

정치·경제·사회 각 분야에서 구조적 문제와 모순들이 곪아 터지며 한국 사회는 비정상 중병을 앓고 있다. 고통을 분담하지 않으면 안 되는 국가적 난제가 산적한데 공동체의 분열과 갈등은 날로 심화하고 있다. 그럼에도 무기력한 국가에 정치는 갈피를 잃고 법치에 대한 불신은 깊어졌으며, 경기침체 장기화에 따른 부채의 늪에서 민생은 허덕인다. 이대로 두면 세월호의 과적화물처럼 언제 대한민국이 침몰할 지 모를 일이다.

무엇보다 사회통합과 경제민주화를 이끌어내고 미래를 준비해야 할 정치는 과거에 얽매어 리더십 부재와 구태의 불통정치로 역주행하고 있다. 경제는 성장우선주의라는 낡은 프레임에 갇혀 엄청난 가계부채와 불평등 구조를 낳고, 이른바 관(官)피아와 수퍼갑(甲)의 횡포에 놀아나고 있다. 광복 70주년을 맞았으나 정치적 이념대결과 마녀사냥의 끝판을 보여주고, 남북관계는 여전히 불예측의 변수들이 지뢰밭처럼 깔려있다.

국가든 기업이든 개인이든 실패의 경험을 소중한 자산으로 활용해야 함에도 우리 사회는 오로지 앞을 향해 달리느라 실패의 진실과 교훈을 기억하고 축적하지 못한 채 결국 반복된 실패를 가져왔다. 더구나 정치 경제 사회 전반의 낡은 프레임과 만연한 안전불감증 의식이 비극적인 참사의 과오까지 낳았다.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우리는 더 이상 변화와 개혁을 지체할 수 없다는 공감대를 확인했다. 세월호 참사에서 우리는 대한민국 침몰의 위기를 느꼈다. 위기감은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분야에서 예외가 없다. 국가를 개조하지 않고서는 나와 가정의 삶이 평온하게 유지될 수 없다는 상식을 깨달았다. 새해 벽두에 지난 실패와 과오에 대한 통렬한 반성과 자기 쇄신이 선행돼야 하는 이유다.

대통령을 포함한 위정자들과 사회지도층 인사부터가 이기와 탐욕에 의해 만들어진 구태, 불신과 반목과 반칙이라는 비정상 늪에서 스스로 헤쳐 나오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하겠다. 아침이 올 때까지 낮과 밤을 가리지 말고 국가개조와 의식개혁에 고군 정진해 다시 신뢰와 소통과 화합으로 이끌어내야 한다. 그렇게 하나씩 고쳐나가는 것만이 모두가 살고 백척간두의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첩경이다.

구약성서 ‘이사야서’ 21장엔 자못 허무주의적인 예언이 실려 있다. 세일산에서 “파수꾼아, 얼마나 있으면 밤이 새겠느냐”는 외침이 들려오자 파수꾼이 “아침이 오면 무엇하랴. 밤이 또 오는데”라고 대답했다는 구절이 그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밤이 오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아침에는 새로운 하루에 희망을 걸게 마련이다

침몰 위기의 대한민국호를 바로 세우려는 희망, 그 신년화두를 위해 너나 없이 모두가 대승적으로 나서야 할 때다. 반칙없는 정정당당한, 비정상을 다시 정상으로 돌려놓을 수 있도록 통렬한 반성과 자기 쇄신, 그리고 사회전반의 패러다임 변화가 일어나길 청원해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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