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규칼럼] 부실이 우려되는 ‘금융혁신 실천계획’

박완규 주필

박완규250금융사들이 돈을 쌓아두고도 중소ㆍ벤처기업 대출 등을 회피하는 보신주의를 혁파하겠다며 금융위원회가 ‘금융혁신 실천계획’을 내놓았다. 기술금융 현장 확산, 모험자본시장 육성, 보수적 금융문화 혁신 등이 주요 골자인데, 한마디로 감독당국이 금융권 직원들을 직접 제재하는 일을 대폭 줄이고 금융사 스스로 징계하도록 위임하겠다는 게 핵심이다.

금융권의 보신주의를 없애 창조금융을 활성화함으로써 창조경제를 뒷받침하기 위해서라는 금융위의 취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왠지 걱정이 앞선다. 그렇잖아도 금융사고가 잇따르는 현 상황에서 무엇보다 감시·감독 기능이 약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금융사고의 빈도와 강도가 더해져 부실만 키우는 결과를 초래할지도 모른다.

이번 금융위의 ‘실천계획’은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물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최근 경제장관회의를 주관할 때마다 “시중에 돈은 넘쳐나고 있다는데 창업ㆍ벤처기업은 여전히 기술금융에 목말라 있다”며 “규제를 아무리 많이 풀어도 일선 금융기관의 보신주의가 해소되지 않으면 성과를 거두기 힘들다”고 질책했다.

실제로 강력한 금융완화책에도 금융권 대출은 리스크가 거의 없는 주택담보대출 등에만 몰릴 뿐 창업ㆍ벤처기업 쪽으론 좀처럼 열리지 않고 있다. 오히려 기업대출 중 중소기업 비중은 2007년만 해도 83.1%였으나 올 6월엔 73.3%로 감소했다. 같은 기간 중기 신용대출 비중도 50.2%에서 42.1%로 줄었을 정도다.

이처럼 현장에서 중소ㆍ벤처기업 대출이 위축되는 원인 중 하나는 적극적으로 대출 등을 해주었다가 부실이 발생할 경우 감독당국이 금융사 직원 개인까지 제재하는 등 지나친 징계관행 때문에 몸을 사릴 수밖에 없었다. 보증이나 담보 대출이 늘어난 반면, 신용대출이 줄어든 것은 불가피한 결과다. 이 때문에 금융권에선 내부 제재가 있는 만큼, 감독당국의 제재를 없애달라고 요구해왔다.

금융위는 이에 화답하듯 당장 다음 달부터 고의나 중대과실이 없는 경우 금융사 직원 개인에 대한 감독당국의 제재는 폐지하기로 했다. 아울러 금융 질서위반 행위가 종료된 지 5~7년이 지난 금융사 및 임직원에 대한 제재 역시 공소시효 방식을 적용해 면제해주기로 했다.

중소ㆍ벤처기업 대출을 직접 촉진하기 위해 기존의 건전성 중심의 금융사 경영평가와 별도로 기술금융 역량과 신시장 개척노력을 평가해 정책금융 우선 지원 등 인센티브를 제공키로 했다. 또 모험자본시장 육성을 위해 연내 기술가치평가에 기반한 3,000억원 규모의 투자펀드를 조성하고 기존 성장 사다리펀드 지원을 기술금융 및 모험투자에 집중키로 했다.

이번 대책은 풍부한 유동성에도 금융사들이 돈줄을 막는 바람에 빚어지는 ‘돈맥경화’를 풀기 위한 전환적 규제완화 조치로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기술금융 실적에 따른 인센티브 제공 등은 자칫 금융사의 해이한 리스크 판단을 부추겨 고질적인 정책금융 부실화 현상을 일으키기 십상이다. 유연하게 돈줄을 풀되, 부작용은 막는 섬세한 정책 조합이 요구되는 이유다.

무엇보다 감독당국이 금융권 직원들에 대한 제재를 줄이고 금융사 자체적으로 처결하게 한 것은 위험성이 적지 않다. 자율의 의미에 걸맞게 제대로 하면 모르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금융사가 그만한 역량을 갖추었는지 장담하기 어려운데다 직원들에 대한 징계를 꺼릴 수 있어서다. 징계가 많다고 알려지면 해당 금융회사에 문제가 많은 것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회사가 계속 잘못을 감추려고 하다보면 작은 사고가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다. 감독당국이 이를 막기 위해 금융회사에 대한 징계를 강화하겠다고 하지만 얼마나 실효성 있는 방안을 내놓을지 알 수 없다. 자칫 금융 감독과 규제의 사각지대가 더 커지지 않을까 우려되는 까닭이다.

결론적으로 금감위의 실천계획이 방향은 맞을지언정 당장 보수적 경영과 대출관행이 당장 혁신될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다. ‘창조금융’을 제대로 하려면 각 금융회사가 지금보다 훨씬 수준 높은 대출심사ㆍ위험분석ㆍ신용평가ㆍ사후관리 능력을 갖춰야 한다. 금융회사들이 이런 능력을 단기간에 갖추리라고 기대하기 어렵다. 고위험 기술금융은 어차피 은행이나 보험회사보다 투자회사나 자본시장의 몫이다.

다시금 금융위는 실천계획을 면밀히 따져 보완할 필요가 있다. 기술금융 확대는 금융업권별 특성에 맞게 추진되도록 잘 유도하되, 감독과 규제의 빈틈을 어떻게 메워 금융사고의 빈발을 막을지 고민해야 한다. 그것이 박근혜 정부의 창조금융 목표에 도달하고 창조경제를 완성시키는 첩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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