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포터에세이] 니체 허무속 희망을 찾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부터 '차라스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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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워너브라더스>
 

[GTN TV=최주호 기자]  R. 슈트라우스의 ‘차라스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장엄한 음악이 인상적인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1968년 작품,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이영화를 본 많은 관객들의 뇌리에 남는 것은 역시 전자에 말한 음악과 우주공간의 모습일 것이다.

그럼 R. 슈트라우스의 ‘차라스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어떻게 나온 음악일까?

정답은 니체에 있다. 니체가 쓴 시형식의 철학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1883~1885)>에서 영감을 얻은 R. 슈트라우스가 작곡한 것이다.

니체는 우리가 흔히 알기로는 무신론자다. 하지만 실상은 그는 무신론자가 아니다. 니체는 1844년 독일 작센지방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독실한 크리스천이다.

그런데 그는 왜 ‘신은 죽었다’고 했을까? 필자가 생각하기로 그가 말한 죽은 신은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허상의 신이 죽었다는 것이다.

이는 중세 유럽의 광기에서도 잘 나타난다. 중세 유럽은 교회의 타락과 마녀사냥,교회끼리의 반목 등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갔다.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잘못된 신의 형상과 신의 뜻으로 사람들이 지배당한 1000년인 것이다.

니체가 살았던 독일은 피지배계층인 농노가 대다수인 봉건적 사회였다. 여전히 교회의 힘은 컸고 약 300여개에 달하는 중소 왕국이 분립하는 어수선한 시대였다.

니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순수한 신에 대한 열정으로 다시 돌아가는 의미였다.

이러한 순수한 믿음에 대한 물음은 비단 니체만이 아니었다. 한세대를 먼저 살다간 칸트도 <순수이성비판>을 통해 이를 지적한 바 있다.

니체가 말한 허무도 사실은 현시대의 타락과 공허함을 거짓없이 대면하는 자세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즉, 허무로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의미없는 현실에서 의미를 찾고 새로운 희망을 찾아나는 것이다.

이 부분은 마치 산드로 보티첼리의 1485년작 <비너스의 탄생>을 떠올리게 한다.

즉, 어둠과 혼돈속에서 오히려 사랑과 미의 여신이 태어나듯 암담한 현실속에서도 새희망은 피어나는 법인 것이다.

작금의 대한민국 현실은 어떠한가?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가 좌우로 나뉘어 반목하고 있고 서로를 헐뜯기 바쁘다. 마치 니체가 살았던 독일의 현실이 여전히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찌해야 할까? 포기해야 할까? 아니면 니체처럼 허무속에서도 희망을 찾아야 할까? 답은 각자에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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