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승대 사범, 아프리카 청소년들에게 주는 ‘희망 메세지’

태권도인 겸 목사로 케냐-탄자니아서 태권도 통한 선교활동 매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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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자 중에. “마스터, 마스터 오래 살고 건강해야 된다”고 해요. 왜냐하면 마스터는 마스터의 몸이 아니라고요. 서로 필요를 채워주고 제가 배우고 같이 살아가고 같이 사는 목적이 있어 너무 감사합니다”
 
 
탄자니아와 케냐에 태권도를 보급하고 있는 이가 있다. 바로 노승대 사범이다. 태권도인이면서 목사이기도 한 그에게서 태권도를 통한 선교활동으로 아프리카 청소년들에게 주는 희망의 메세지를 들을 수 있었다.
 
아래는 지난 12일 이대의 마수리협회 사무실에서 노승대 사범과 갖었던 인터뷰 내용.
 
-태권도를 통해 아프리카에서 선교활동을 하고 계신데요. 아프리카에서 처음 맞닥뜨렸던 어려움이 있다면?  
“태권도가 한국을 대표하는 무예이기는 하지만 아프리카의 경우 모든 아프리카 국가에 알려져 있는 건 아니거든요. 가장 힘든 부분은 역시 언어죠. 결국 그나라 언어가 아니면 이해하기 힘들거든요. 그래서 마스터클럽이라고 어른들을 대상으로 하든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든 언어할 때 차이가 집중력의 차이로 나타나더라고요. 그래서 그 나라의 언어를 익히는데 노력했습니다.”
 
-어떤식으로 태권도 교육을 운영하시나요?
 
“마스터클럽도 운영하지만 어린이 시범단도 운영합니다. 시범단이라고 했을 때 전 세계적으로 애들이 더 호감이 가지 않습니까. 어른들은 잘하면 잘한다고 생각하고. 그리고 애들중에서 재능있는 친구들을 따로 모았습니다. 선발해서요. 시범단을 만들고 집중적으로 교육시켜서 학교마다 홍보를 다니는 겁니다. 이따 보시면 그 장면들이 나옵니다.(스마트폰에 해당 영상을 보여주었다.) 재능있는 친구들 연령대가 13살 정도 됩니다,  시범에 대한 것은 제가 특별지도 하고요 나머지 기본기에 대해서는 클럽친구들이20명 됐었는데 그 친구들이 얘들을 기본기를 따로 가르치고 시범단은 제가 따로 하고요.”
 
-아프리카 하면 유연성인데요.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고요 그중에서 재능이 특출한 애들을 따로 뽑아서 했습니다. 오랜 역사가 있는학교가 있는데요. 사립 학교 중에서는 수준 높은 학교에 시범을 하게 됩니다. 하기 전에 학교측에 태권도라는 좋은 운동이 있다고 소개했고요. 그러면 한 번 보자해서 시범을 보이니까 관심을 갖더라고요. 아프리카는 예체능 과목이 없습니다. 체육시간에는 뛰는거, 공하나 있으면 공차는거가 전부에요. 그런데 태권도를 넣으면 퀄리티가 있는거죠. 아프리카에서는 태권도가 고급 스포츠입니다. 그래서 제가 필요로 하는 곳에서 가장 퀄리티가 있고 미래지향적인 태권도를 알리고 교육하는 일에 보람을 느낍니다.”
 
-동영상에 나오는 태권도 동작을 다 가르치신건가요?
 
“네 제가 직접한거죠. 하루에 6시간씩이요. (화면 보며) 이 친구들 구성을 보면 어린학생에서부터 조금 큰 친구들까지 다양합니다. 길거리에서 노점상하는, 모기장 두 개 팔면 본전이고 세 개팔면 점심 먹을 수 있고 네 개 팔아야 조금 남는 그런 친구들이니다. 아프리카 청년 실업이 너무 많습니다. 처음 취지가 청소년들에게 태권도를 보급해서 일자리를 창출하자는 것이었죠. 그 중에서 잘하는 친구들은 소질을 발해서 국가대표도 만드는 게 목표였고요. 또 하나는 직장 학교에 보면 아시겠지만 굉장히 이슈할 수 있는 스포츠지 않습니까. 태권도를 더 알리고 보급하면 배우고자 하는 분들이 늘어날테고 아프리카는 신흥시장으로 앞으로 발전가능성이 무궁무진합니다. 아프리카 청녀들이 태권도를 가르치는 일을 직업으로 삼아도 좋을 것 같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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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권도 선교활동 동영상을 보여주고 있다.
 
-태권도를 통한 선교 활동을 하신 게 어느정도 되신건지?
 
“2009년부터 말부터 시작했습니다.”
 
-치안은 어떻습니까?
 
“치안은 한 마디로 설명하기 좀 그렇고요 그래도 탄자니아는 안전한 편입니다. 쿠테타가 일어난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치안은 우리나라로 치면 시골분위기가 나는 정도입니다.”
 
-탄자니아하고 케냐에서 함께 활동하고 계신건가요? 
 
“예 같이 하고 있습니다. 안 그래도 어제 제가 국기원쪽에 그 분을 해외 담당하시는 분을 만났는데 중간에서 다리역할을 할 사람이 없는 거예요 하고 싶어도. 그쪽에서도 아프리카를 놓고 지도자를 교육하고 싶어 하고요. 그런데 그쪽에 정확한 정보가 없으니까 중간에 다리 역할, 저처럼 이런 사람이 필요한 거죠. 저는 또 그런 것을 통해서 제자와 아프리카 쪽에 더 큰 태권도의 발전을 도모하고 싶고요. 또 하나는 태권도인이 태권도 하는 자부심을 느끼고 문화적이나 산업적으로도 굉장히 도움이 된다고 봅니다.”
 
-시범단의 이름이 있나요?
 
“시범단의 이름은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제가 아프리카드림태권도로 하고 있으니까 그 팀으로 보시면 됩니다. 마스터클럽, 어린이 시범단이 있습니다.”
 
-시범단의 연령대는?
 
“적게는요 8세부터 15살. 그리고 한국 나이로 치면 17살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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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소년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치고 있다. <사진=노승대>
 
-남녀 성비율은?
 
“일단 여자는 없었고요. 그 지도자 급에서는 탄자니아 있을 때는 남자가 대부분이었습니다. 남자가 제일하기 쉽고. 아직 여자분들에 대한 개방적이지 않은 것이 있기 때문이죠. 그런데 학교에서 애들을 가르치는 클럽의 경우 여자 비율이 의외로 많습니다.”
 
노승대 사범이 자료를 꺼내 보여주었다.
 
“제가 자료를 준비해왔는데요. 좀 보여드릴게요. 제가 선교사기 때문에 이것은 선교목적으로 했는데 제가 하고 있는 방향은요. 얼마 전에 그 체육관 사역 중에 하나가 이들이 일자리 창출하기 이전에 지도자로 교육받는 겁니다. 쉽게 얘기하면 국가대표 훈련도 있고요. 그 안에는 국가대표 훈련만 하는 것도 아니고 중간에 큰 대회가 없을 때는 밥 먹고 살아야 되지 않습니까. 근데 정부에서 지원해주는 것도 아니고 협회에서 지원해 주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본인이 각자 알아서 해야 되기 때문에 제가 그 일을 한거죠. 그래서 체육관이 반드시 필요했고요. 그런데 전에 있던 체육관이 개인적인 사정인지 땅을 팔면서 무너지게 됐고, 얼마 전에 우리나라로 치면 강남 같은 곳에 체육관을 새로 이렇게 짓게 됩니다. 이건 체육관이고요. 지금 보시면 허름해 보이죠? 여기는 샤워시설하고 화장실이고 여기는 그 기숙사 남녀. 이렇게 하고 있는 데가 동아프리카에 유일합니다. 여기서는 뭐 뼈대 세울 때 허술해 보이는데 이렇게 하는 데가 없어요. 이렇게 지었습니다. 여기는 기숙사인데 조금 페인트 칠이랑 하면 훨씬 아름다울 겁니다. 저도 그렇고 제 사비로 다 할 수 있는 게 아니라서 주변의 지인들 도움을 받아서 그렇게 진행하고 여긴 사무실이고요. 여긴 제자들, 시범하고 난 뒤에. 이 사진은 제가 선교사기 때문에 운동 전이나 운동하고 난 뒤에 포럼을 합니다. 그리고 기도회도 하고요 왜냐하면 우리가 최선을 다하지만 믿음이 필요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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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케냐에서 태권도 체육관을 건축하는 모습 <사진=노승대 사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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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축된 체육관안의 모습 <사진=노승대 사범>
 
-제자들이 했던 말중에 가슴에 가장 와닿던 말이 있다면?
 
“제자 중에. “마스터, 마스터 오래 살고 건강해야 된다”고 해요. 왜냐하면 마스터는 마스터의 몸이 아니라고요. 마스터를 통해서 우리가 다 같이 살 길이 있다고요. 그래서 나도 ‘너희들 없이는 일을 못할 것이다.’ 왜냐면 보시면 아시겠지만 제가 하는 게 아니잖습니까. 결국은 서로 필요를 채워주고 아까 말씀하다가 말았는데 태권도를 그냥 가르친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아니에요 제가 배우고 같이 살아가고 같이 사는 목적이 있어 너무 감사합니다. (사진을 보여주며) 근처의 공원인데 평상시에 야외훈련을 이렇게 합니다. 체육관 무너졌을 때 두달 정도 그 비맛으면서도 했어요. 그래도 너무 행복했어요. 이팀이 국가대표라고 보시면 됩니다.”
 
-동아프리카 여자태권도 선수권에서 좋은 성적을 내셨다고 하던데요.
 
“5개 팀이 참석했습니다. 케냐, 부룬디, 르완다 등 5개 나라에서요.
 
(사진을 보며) 제자 분들에게 무어라 말씀하시는 장면 같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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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프리카 여자태권도 선수권에서 선수 지도를 하고 있다. <사진=노승대 사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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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프리카 5개국 경기(여자부)에서 케냐팀을 이끌어 좋은 성적을 얻었다. <사진=노승대 사범>
 
여기 대화하는 내용은 ‘너희들 수준이 좋기 때문에 금메달 따라’는 이야기입니다. (웃음) 여기는 제가 각종 대회에 초대 받아서 가는거고요. 국가대표 선발전에. 이중에는 케냐 올림픽 위원장도 있고요. 이렇게 해서 어디로 보내냐? 학교 같은 대학도 있고요 인터넷이나 스쿨도 있고요. 대학생들입니다. 똑같은 대학입니다. 케냐에는 두 개의 대학이 가장 좋습니다. 나이로비대학과 케나타대학. 케나타라는 말이 케냐의1대 대통령의 이름을 딴 겁니다 .근데 그 친구들이 실력은 좋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공부하는 애들이기 때문이죠. 틈틈이 일주일에 3번씩 많게는 5번씩 운동을 합니다. 매일 2시간씩요. (사진을 보이며) 여기는 도복을 입었고 여기는 도복을 안 입었잖아요. 이유가 있습니다. 도복 살 돈이 없어서 일주일에 두 번 학교에서 대여를 받습니다. 심사 때하고 시합 참가할 때에요. 좋은 점은 퀄리티가 있는 게 이 친구들이 나중에 학교 선생님으로 가기도 하고요. 중요한 자리에도 가요. 리나라도 그렇지 않습니다 SKY나온 출신 인사들이 중역에 앉는 것처럼요. 이 친구들이 나중에 지금 태권도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태권도의 보급과 문화를 형성하는데 굉장히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여기도 저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가고요. 많게는 이주에 한 번정도 가고 나머지는 사범이 가르칩니다.”
 
-사진을 보니 해외 영사관 자녀들도 가르치시는 것 같은데요.
 
(사진을 가리키며) 여기는 인터내셔널 스쿨입니다. 여기 이 학교에 박윤희 (한국예술진흥원) 교수님 아드님도 다니고 있는데 올해 1월 달부터 다니고요. 40개 나라의 친구들이 와 있습니다. 다 수준이 높아요. 잘 아시겠지만 미국 내에서도 수준이 높고 주재원 자녀들, 대사관 자녀들. 그 친구들이 24명이 태권도를 배우고 있습니다. 제가 가르치고 있고요. 제가 케냐말은 잘하는데 영어가 조금 딸립니다. 제가 설명하면 제자는 영어로 통역해서 가르칩니다.”
 
인터내셔널 스쿨 학생 지도 모습 
▲ 인터내셔널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사진=노승대 사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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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승대 사범과 박윤희 교수(우), 박윤희 교수의 아들은 현재 아프리카에서 인터내셔널 스쿨에서 박승대 사범에게 태권도를 사사하는 중이다.
 
-그러한 활동을 통해 자연스레 외교가 되겠네요.
 
“학생들이 엄청 열정이 뛰어납니다. 태권도는 아시겠지만 얼마나 인사를 시키는지 몰라요. 부모들이 너무 좋아해요. 아까 말했듯이 엘리트 스포츠라고 생각합니다. 현지인이 뚫어서 하기는 힘들고요. 이게 현지인은 저도 개인이지만 들락날락할 수 있는데 한 클래스에 3~4명이 투입됩니다. 전체를 하기도 하고요. 또 각자 나눠서 하기도 하고. 굉장히 외교 문화적으로 좋은 거죠. 그리고 공짜로 하진 않습니다. 많이는 받진 않지만요.  (사진을 가르키며) 여기 계시는 분들도 한국분이 운영하시는 유치원인데 전에부터 태권도를 가르치고 싶었다고 하시더라고요. 왜냐하면 거기 체육시간이 있는데 하는 게 없어요. 그냥 놀든지 뭐 하든지 하는 거죠. 태권도를 통해서 특별하게 교육을 받는 겁니다. 한 80명 정도 배우고 있습니다.”
 
-사범님께서 활동하시는 케냐에 대해 좀 더 알려주세요.
 
“케냐에 세계 3대 슬럼이 있습니다. 남아공에 하나 있고요 아프리카에는 케냐에 있는데, 그 중에 한 곳에 제가 사역을 합니다. 여기는 5년만 사는 친구들도 있어요. 제가 관계된 사람 집을 방문했는데 30분을 못 앉아 있더라고요. 이해되시죠? 길거리에서 자는게 훨씬 나아요. 저도 웬만한 내공이 좋은데 내공이 좋다는 것은 어떤 환경에서도 잘 살아남을 수 있는데 미안하더라고요. 그 안에 사연을 들어보면 더 처절해요. 거기 사는데 엄마가 싱글맘이에요. 아빠가 없어요. 아빠가 한 번 돌아왔는데, 케냐는 주로 싱글맘이 많습니다. 남자애들이 사고 쳐놓고 도망가 버려요. 그러면 몇 년 만에 나타나서 부부관계를 또 합니다. 안 받아야 되는데 또 받아요. 에이즈를 옮기고 가요. 또 뭐가 행복한지 딸들이 그렇게 웃어요. 뭐 그게 말이 필요 없습니다. 그냥 가면 미안하고요. 권총 강도도 많습니다. 자기들끼리도 위협을 하고는 해요. 케냐는 웬만하면 권총 강도하다가 잡히잖아요. 대치되잖아요. 그냥 쏴버려요. 안 잡아요. 그런 줄 알면서도 권총 강도가 있어요.”
 
-탄자니아에서 어떤 활동을 이어가신가요?
 
“탄자니아에서 올해 말부터 본격적으로 그 폴리스 아카데미하고 군하고 협회하고 얘기 된 것도 아직 진행 중입니다만 2020년 도쿄올림픽 대상으로 준비해서 어린애들 키워서 해보자는 제안이 들어왔기 때문에 진행 중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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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프리카에서 태권도를 통한 선교활동을 하고 있다. <사진=노승대 사범>
 
-태권도협회에서 올림픽위원회에서 인정해준 협회가 있을 텐데요.
 
“케냐는 아까 국가대표를 하기도 했지만 워낙 많이 싸워요. 부패가 심해요. 뒤에서 제자만 양성하고 언젠가 필요하면 손잡을 수 있기 때문에 싸우지 않고 잠시 뒤로 빠져있고요. 그래도 탄자니아는 좀 낫습니다. 그리고 좋은 게 탄자니아는 태권도 인구가 소수입니다. 근데 원하는 소비층이 굉장히 많아요. 그래서 본격적으로 준비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제가 오히려 볼모지이기 때문에 제가 전에부터 타켓으로 하고 있는데요. 케냐는 이스트 아프리카 중심입니다. 케냐는 태권도가 들어 온지 한 32년에서 35년 됩니다. 또 태권도 인구가 만명 가까이 돼요. 그리고 만나보니까 부자들이 굉장히 태권도 교육에 신경을 많이 씁니다. 학교에서도 요청이 와 있고요. 케냐에 있는 친구들은 실력이 더 좋기 때문에 탄자니아로 데리고 와서 로테이션으로 돌릴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탄자니아하고 케냐하고 붙어있나요?
 
“네 붙어있습니다. 근데, 버스로 가면 저는 뭐, 경제적으로도 그렇고 버스로 가면 18시간 갑니다. 딱 두 번 쉬고 갑니다. 갔다 오면 다리가 떨려버려요. 근데 저도 미안한게 운전수가 한 번도 안 쉬고 가요. 한 시간 30분 정도 쉬는데 딱 두 번 화장실가면서 간식 조금 사서 먹고 가고요. 국경 넘어갈 때 써야 되니까 이미그레이션. 그때 말고는 계속 달려요. 자는 게 나아요. 보면 스트레스 받아요. 중앙선이 따로 없습니다. 그런데도 다 살아갑니다.”
 
-사범님이 탄자니아하고 케냐를 선택한 이유는?
 
일단은 그 제가 한국에 있는 것보다 저를 가장 필요로 하는 곳이 어딜까 생각을 했습니다. 그 중에 제가 잘 몰랐지만 막연했지만 아프리카라고 생각했는데 그나마 제가 알게 된 나라가 탄자니아였고요. 탄자니아를 알고 나니까 한 나라만 할 것이 아니고 서너 개는 많게는 다섯 개 정도는 알아야 할 것 같았습니다., 아까 스와힐리어라고 말씀드렸는데 탄자니아에는 이게 공용어입니다. 5개 나라 이스트 아프리카의 공용어입니다. 케냐는 더 좋은 거는요. 영어하고 스와힐리어하고 같이 씁니다. 그래서 그 언어권 안에는 이스트 아프리카가 정치, 경제, 문화 공동체입니다.”
 
-운영을 하면서 어려운 점이 무엇인지?
 
“나라별로 좀 나눈다면요 케냐 같은 경우는 제가 아까 태권도가 들어 온지 오래됐다고 했는데 그래도 제가 협회 회의를 같이 했었고 하다보니까 지원받는 게 많아요. WTF 등 이렇게 해서. 근데 밑으로 가지 않아요. 그런 거에 있어서 저는 마스터이기도 하고요. 승단하는 문제가 있어요. 진짜 20년 저보다 어떤 사람은 30년 하고 그랬는데 1단, 2단 그래요. 미안할 정도로. 그러면서 승단 비용을 고가액으로 받아먹고 말 그대로 사기친거죠. 핑계는 국기원에게 돌리고. 그런 것을 보면서 제가 협회 쪽에도 그렇고 대사관 쪽에도 실제적으로 할 수 있으니까 했으면 좋겠다고 하니까. 대사관에서 하는 얘기가 그겁니다. 명분을 만들고 싶은데 자기 중심으로 해야되고 개인한테는 못 도와준다는 거예요. 제가 그쪽에서 코히카에서 하는 행사의 시범도 하고 협조를 했는데요. 오피셜하게만 하겠다는 거예요. 물론 제가 무슨 의미인지는 알겠는데 특수성이라는 게 있지 않습니까. 저보고 하는 얘기가 선교사니까 그 일하시고 본인들은 국기원쪽에 하겠다는 거예요. 제가 어제 무주회의에 갔다 왔어요. 관계자 때문에 무주에 갔다 왔어요. 지도자 연수 그런 아프리카 쪽에 하시고 싶어 하셔서 그것 때문에 의논했는데 예정된 게 없어요. 그 말은 충분히 조금만 이해되면 그런 오피셜한 게 중요하지만 그걸 넘어선 뭔가 대책이 이뤄져야하는데 인맥 없는 게 죄구나 싶어요. 하고 싶어도 안 되는 구나 그런 마음이 들었고요.”
 
-끝으로 하시고 싶은 말씀은?
 
“22일정도에 다시 아프리카로 돌아가는데요. 돌아가서 더 열심히 해서 제가 가르치는 학생들이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는 그런 날이 오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한국에 계신 많은 분들께서 관심을 가져주시고 도움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십시일반 얼마가 아니더라도 아프리카에서 큰 도움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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