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마량 5형제? 한국엔 이현곤 태권도 6형제

미국 현지 이현곤 큰사범 SNS 원격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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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현곤 큰사범(태권도 9단),<사진=이현곤 페이스북>

GTN-TV는 이억만리 타국에서 태권도를 통해 국위선양하는 분들의 이야기를 연속해서 취재하고 있습니다. ‘Master Lee Taekwondo’ 이강일 사범에 이어 38년째 미국에 태권도교육과 봉사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이현곤 사범. 아래 인터뷰 내용은 6형제가 태권도 일가를 이뤄낸 이야기입니다. <편집자주>  

SNS를 통하면 전세계 어디나 소통이 가능한 세상이 되었다. 비행기로 14시간 거리에 떨어져 있는 미국이라도 페이스북을 통하면 메세지를 바로 주고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이현곤 사범과 인터뷰는 시간,공간의 차이를 넘어서는 이러한 SNS 페이스북의 특성을 활용하였다. 아래는 3월 3일 이현곤 사범과 페이스북 메세지를 통해 진행한 인터뷰 내용이다.  

-이현곤 사범님 페이스북 메세지를 통해 인터뷰하게 되었네요. 태권도인으로서 미국사회에 정착한 한국사람으로서 소개말씀 부탁드립니다.  
“저는 태권도인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이곳 미국사회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정통무술, 태권도를 가르치는 교육자로서의 본분에 최선을 다하여 왔습니다. 누구보다도 부와 명예를 모두 얻은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또한, 저는 미국학교의 정규과목에서는 물론 학원, 스포츠센터 등 어느 교육 현장에서도 바로 가르치지 못하는 미국 어린이들의 인성교육을 우리의 전통 정신교육을 바탕으로 한 태권도 수련법에 접목시켜 미국사회에 새로운 교육문화를 창출하는데 일조해 왔고 태권도를 통한 성인들의 정신수양 및 건강증진에 앞장서왔습니다.”  

- 미국사회에 정착하시면서 많은 어려움을 겪으셨을 것 같은데 어떤 점이 힘들었고 어떻게 극복하셨는지요?
1976년 2월 10일 태권도 정신 하나만을 굳게 믿고 자유와 기회의 나라, 세계에서 문화문명이 최고로 발달되어 있다던 나라 미국에서 청운의 꿈을 마음껏 펼쳐보겠다는 희망을 안고 한국을 떠났습니다. 태권도와 함께 무엇인가를 이룩해 낼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어요. 

어떠한 고난도 극복하고, 공부하며 체험해서, 얻어지는 값진 결실을 하나씩 쌓아 나만의 나래를 활짝 펴보겠다는 생각이었죠. 박찬학 선배님의 초청을 받아 2억만리 낯설고 외로운 미국으로 이민을 왔습니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한 마디로 실망의 연속이었어요. 영화 같은 상상속의 모습과는 달리 처음 대면한 미국의 실제 광경은 꿈 많은 이 젊은이에게 실망과 좌절을 안겨주었습니다. 뉴욕시를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길 위에 굴러다니는 쓰레기에다 불쾌한 오물들, 그리고 낙서로 가득한 지하철을 보면서 미국에 대한 기대와 환상이 실망과 좌절로 한 순간 바뀌고 말았습니다. 그 뿐 아니라 한국처럼 대중교통이 편리하게 발달되어 있지 않아 운전을 할 줄 모르는 저에겐 일상생활을 하기에도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어요. 깊은 실의와 혼동에 빠져 한국으로의 귀국도 고려해 봤지만 아무 것도 이룩해 놓은 것 없이,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도 없이 무작정 돌아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어요. 장고 끝에 몇 년 만이라도 참고 견디어 보자는 각오로 도장 일에 전념했습니다.

그러나  문제점들이 하나씩 불거져 나오는데 극복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가장 심각했던 것은 언어의 장벽이었고 풍습이나 습관에도 익숙지 못하다 보니 수련생들 지도에 자신감이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수련생들 지도와 통제가 수월치 않았고 선배님 뵙기에도 면목이 없었어요. 죄송한 마음에 생활비가 부족하다는 말씀도 못 드리고 밤에는 잠을 자는 대신 편의점에서 일을 하고 낮에는 도장 일을 돕곤 했습니다. 이렇게 힘든 일을 반 년 넘게 하는 동안, 매일 1시간 30분씩 운전을 하고 오가는 길에 몰려오는 졸음 때문에 죽을 고비도 몇 번씩 넘겼어요. 편의점에서 가까운 조재형 선배님 댁으로 거처까지 옮겨가며 두 가지 일을 힘들게 하면서도 내가 미국에 온 목적을 잊지 않으려 노력했습니다.  이렇듯 밤과 낮을 구분하지 않고 힘들게 보냈던 시간은 돈 주고도 살 수 없을 미국에서의 이민 생활에 큰 밑천이 되어준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77년 1월 미국 텍사스주 오대사 시에서 박희덕 사범의 도장에서 일할 때의 모습

▲ 77년 1월 미국 텍사스주 오대사 시에서 박희덕 사범의 도장에서 활약할 때의 모습,<사진=이현곤 큰사범 페이스북>

-중국 삼국지를 보면 마량 5형제가 있습니다. 그중 으뜸인 맏이 마량을 백미라고 하고요. 이현곤 사범님도 6형제가 태권도를 하고 있고 태권도계에 가장 큰 형제 태권도 사범단을 이루셨는데요. 어떤 계기로 형제가 태권도를 하게 되었는지요?
“마량 5형제에 비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계기라면
교육 사업가인 아버님께서는 돌아가시며 가세가 급격히 기울었어요. 힘든 가정환경 속에 남아있는 우리형제들이 언제나 염려스러웠습니다. 그래서 저는 자신을 갖고 형제들에게 부탁했습니다. 모두가 태권도를 하라고 그리고 미국에서 같이 살자고. 첫 번째로대학 재학 중인 동생부터 초청을 하여 학교를 보내면서 미국 태권도를 터득케 하여 독립을 시킨 다음 다른 동생들을 초청 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지금은 사업하는 남편을 만나 태권도와 멀어진 여동생을 포함하여 동생들 모두가 미국에 들어왔습니다. 형님 한분만 선산을 지키시기 위해 고국에 남아 계시죠.

6형제가 함께 있으면서 서로 돕고 발전하는 것도 좋겠지만 형제들도 각자의 앞날을 스스로 개척해 가기를 바라는 마음에 한국 사람들이 들어가 있지 않은 지역을 찾아보았습니다. 1982년 여섯째 동생 이준혁 사범을 통해 한국 사범이 한 명도 없던 노스캐롤라이나 뢀리시에 첫 도장을 개설하게 하였습니다. 그는 지금 그 뢀리시에서 준리데이(Jun Lee’s Day)를 선포할 만큼 지역사회에 앞장서서 태권도 보급은 물론 국위선양을 하고 있으며 근소한 차로 낙선은 하였지만 뢀리 위성도시인 나잍데일 시에서 선출직 시장까지 출마한 경험이 있습니다. 또한 태권도 교류를 발판으로 남북관계 개선에도 일조를 하기 위해 평양을 방문하였고 장웅 ITF 총제와 각별한 사이가 된 것으로 알고 있고요.

그 이후 1984년 다른 동생들 네 명이 준혁 동생과 합류하여 지금은 각자 도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셋째 동생 이강석 사범은 러시아를 왕래하며 태권도 보급에 심혈을 기울이면서 미국 국가대표 감독 및 코치로도 활동을 했습니다. 다른 동생들(병석 – 대학교수, 시의원, 교회 장로, 상호- 영화 배우, 한인회 사무총장, 막내 정호- 미국 품세 챔피온 등) 또한 수많은 업적들을 쌓아 가며 이제는 저보다 명성이 높고 활동을 더 많이 할 뿐 아니라 도장운영도 저보다 잘하고 있어요. 저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6 형제가 태권도 도장을 성공리에 운영하고 있는 태권도 집안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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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에서 유일하게 6형제가 태권도 사범으로 활약하고 있는 이현곤 큰사범 6형제<사진=이현곤 페이스북>

-미국사회에 적응하시기 힘드셨군요. 극복 과정이 듣고 싶네요.
“1979년 9월, 뉴욕 지역에 뿌리를 내리려던 준비를 중단하고 다시 이곳 버지니아 주의 헌돈시로 거취를 옮길때였습니다. 모든 경비를 분할해서 갚아 가기로 하고 겨우 15 명만의 관원이 남아 있는 도장을 인수하였죠. 거처도 정하지 못하고 친구 부부의 단칸방 아파트에 한 달 남짓 얹혀살면서 시작한 도장은 현실적으로 전혀 희망이 없어 보였습니다. 종일 도장에 나가 있어도 태권도 수련에 대한 문의 전화는 한 통화도 없었고 도장 매매나 임대계약에 관한 답답한 전화만 걸려왔죠. 자금이 넉넉지 못하니 비싼 광고를 낼 형편이 아니었고요. 심사숙고 끝에 학생들에게 내가 처해있는 형편을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도움을 청했어요. ‘지금 현재 상황이 도장 문을 닫아야 될 형편이지만 너희들이 조금씩 나를 도와주기만 하면 내가 기필코 이 도장을 살릴 수 있다. 너희들 도움 없이는 문을 닫고 여기를 다시 떠나야하는데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느냐’고 물었더니 어떻게 도와주기를 바라느냐고 되물어 왔어요. 매일 도장에 오면서 하루에 한 사람이 10장 내지 20장씩의 광고 전단지를 복사해 갖고 오고 또한 송판이나 브리즈블록을 한 장씩만 사다 달라고 했어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를 찾아 순회하면서 격파시범을 보이자고 한 것이죠. 관원 15명 모두가 발 벗고 나서서 도와준다고 하더군요. 그때의 감사함은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141991년 시범▲ 1991년 행사에 시범을 보이고 있는 이현곤 사범,<사진=이현곤 사범 페이스북>

간혹, 시범을 보이다가 장소사용 허가를 받지 않았다거나, 때리고 부수는 행위는 자기 상가에서 할 수 없다하면서 등을 떠밀어 쫓아내기도 했어요. 그러나 그렇게 동분서주 뛰어다니다 보니학생들은 물론 전에 저를 초청했던 선배님과 함께 운동했던 학생들까지 하나 둘씩 찾아오기 시작하고 신규 등록 학생들도 조금씩 늘기 시작했습니다. 급기야는 학생 수에 비해 장소가 비좁아 운동을 하는데 불편 할 정도가 되었어요. 저는 서투른 목공이지만 틈만 생기면 도장을 넓히는 작업을 하며 학생들에게 편의를 제공해 주려고 노력했습니다.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시범도 보이면서 땀에 흠뻑 젖도록 관원생들을 지도하는 열성과 성의를 다 하였습니다.

이러한 생활이 계기가 되고 동기가 되어 나의 태권묘기 및 위력시범 기량도 향상되었고 주위로부터 실력 을 인정 받아 미국의 수도 워싱턴(Washington D. C.) 전역은 물론 아칸소,캘리포니아,플로리다,오하이오,오클라오마,북 캐롤라이나,뉴저지,뉴욕,택사스  등의 수많은 주의 태권도 행사에까지 참석하여 출장시범을 하였습니다. 또한 불우이웃돕기 성금을 모금하여 기부하는 행사에 일조하여 수많은 상장과 상패를 받는 영광과 명예 또한 얻게 되었고요.” 

-태권도인으로서 할 수 있는 제안이 있다면?
태권도의 올바른 역사정립은 전 세계 태권도인들 모두의 당면과제라고 생각합니다. 태권도는 남을 공격하기 위한 단순한 무술이 아닙니다. 태권도 속에 숨 쉬고 있는 우리의 혼과 정신을 면면이 이어가기 위해서라도 바른 역사연구는 이루어져야하며 체계화 되어야 합니다. 일제가 말살시키려 했던 고유의 태권도정신을 우리의 후손은 물론 전 세계 태권도인 들에게 전해 주어야 할 의무가 우리에겐 아직도 남아 있음을 직시해야 합니다.

-태권도인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은?
우리 모든 태권도인들은 서로를 존경하며 사랑과 믿음으로 언행을 경건히하여 서로 간에 의지하고 베풀며 이끌고 밀어 주어야 합니다. 세계태권도 발전은 물론이고 각자 풍부한 지식과 교양을 쌓아 주위사람들 모두에게 모범이 되기를 전심으로 바랍니다. 경제적으로도 누구보다 여유롭고 풍족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 주기를 간절히 바라고요.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현곤 큰 사범은?
1947년 4월 24일 전북 고창군 해리면 안산리 126번지에서 출생1976년 2월 10일 미국 영주정착(박찬학 태권도장 초청) 1984년 4월 19일 미국 시민으로 귀화-현 국기원(세계 태권도 본부) 해외 자문 위원-현 태권도 무덕관 9단
-현 태권도 국기원 공인 9단 (08-01001607)
-현 태권도 국기원 1급 국제사범 (1619001)
-현 H.K. Lee 태권도장 (헌던) 사부
-전 미국 태권도 고단자협회 인성교육 캠페인 추진위원장
-전 미국 태권도 고단자협회 시상 위원회 부위원장
-전 국기원 교육분과 위원장(미국 사범교육을 위한 특별직) (1010817)
-전 미국 국기원 부원장
-전 세계 태권도연맹 교육 분과 위원회 부위원장(2005-403)
-전 미국 태권도협회 교육 분과 위원장
-초대 통합 워싱톤지구 한인태권도사범 협회장
-초대 통합 버지니아 주 태권도 협회장
-1992년 1월 태권도 타임스 (Times) 표지인물
-1995년 5월 6형제(현곤, 강석, 준혁, 병석, 상호, 정호)사범 태권도 타임스 (Times)
표지인물(전 세계에서 전무후무한 6형제가 유일하게 태권도장 직영하는 태권도사범 가족)
-2013년 4월 20일 미국 고단자회 명예의전당 태권도 대사상 수상
-1996년 1월 미국 무도 잡지 불랙밸트 (Black Belt) 표지인물
-85년 11월 5일자 USA Today 신문 ‘수퍼스타’로 소개
-세계 태권도연맹 총재 표창
-국기원장 표창
-대한 태권도 협회장 표창
-국립 한국체육대학 총장 표창
-전라북도 태권도 협회장 표창
-경상북도 태권도 협회장 표창
-대한 무도 합기도 협회장 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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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대한 이야기는 지난 3월 SNS를 통한 원격 인터뷰를 통해 본지에 소개되었다.  http://gtntv.co.kr/?p=66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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