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社說] 러시아에 金 안긴 안현수와 한국빙상 미래

논설위원실

20140215101039_409596_520_365소치올림픽이 한창인 15일 저녁 우리 국민들의 이목은 단연 쇼트트랙 남자 1000m에서 금메달을 딴 안현수에게 쏠렸다.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 3관왕과 세계선수권 5개 대회 연속 제패 등 최고 기량을 펼쳤던 안현수는 부상과 국가대표 탈락, 소속팀 해체, 빙상연맹 파벌 싸움 등이 맞물려 불가피하게 2011년 11월 한국을 떠나 러시아로 귀화했다. 그리고 2년 4개월만에 러시아 대표로 나와 이날 생애 4번째 올림픽 금메달을 거머쥔 것이다.

안현수의 금메달은 소치올림픽 이전에는 쇼트트랙에서 메달이 없었던 러시아의 첫 번째 금메달이자 10일 1500m에서 안현수가 얻은 동메달에 이은 두 번째 메달이 됐다. 러시아 언론들은 빅토르 안(안현수의 러시아 이름)에게 `황제의 귀환’이라며 최대의 찬사를 보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안 선수에게 축전을 보낸데 이어 페이스북 커버 사진을 아예 러시아기를 흔들고 있는 안현수의 사진으로 변경했다고 한다. 이쯤되면 그가 인터뷰에서 밝혔듯이 그의 귀화는 잘못된 선택이 아니었다.

반면 공교롭게도 우리 선수들은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에서 이상화가 대회 2연패를 이루면서 우리 선수단에 첫 메달을 선사했고, 쇼트트랙 여자 500m에서 박승희가 동메달을 획득한 데 이어 쇼트트랙의 심석희가 여자 1,500m에서 은메달을 보탠 것이 전부다. 남자 선수들은 아직 하나의 메달도 수확하지 못하고 있다. 쇼트트랙 최강국임을 과시해왔던 한국 선수단에게는 너무도 초라한 성적표다. 당연히 종합순위 10위라는 목표에도 적신호가 켜지게 됐다. 상황이 이쯤되자 분노한 네티즌들로 인해 빙상연맹 홈페이지가 다운되는 사태가 빚어졌다고 한다.

우리 선수들을 비난하는 글들도 상당수 올라오고 있다. 올림픽이 끝나면 빙상연맹에 거센 후폭풍이 몰아닥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한국 쇼트트랙은 그동안 국제무대를 휩쓸면서 자연스럽게 선수층이 두꺼워지고 `태극마크 = 올림픽 금메달’이라는 등식이 생기면서 대표팀 선발전은 ‘바늘구멍’이 됐다. 워낙 선수층이 두껍다 보니 선수들의 실력도 종잇장 차이여서 좁은 관문을 통과하기 위한 선수들끼리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 졌다. 그러다 보니 일각에선 ‘짬짜미’가 생겨나고, ‘네 편, 내 편’으로 갈리는 파벌이 극성을 부리게 된 모양이다. 이 상황이 `빅토르 안’을 만들어낸 주요 원인의 하나임도 주지의 사실이다.

올림픽이 끝난 후 빙상연맹의 부조리에 대한 조사는 불가피해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이 “안현수 선수의 문제가 파벌주의, 줄세우기, 심판부정 등 체육계 저변에 깔린 부조리와 구조적 난맥상에 의한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고 말한 것도 그 가능성을 매우 높게 한다. 안현수의 승리는 값진 것이다. 그 개인의 인생역경을 생각하면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안 선수가 대표팀 탈락과 소속팀 해체 이후 절망에 빠져 모든 것을 중도에 포기했더라면 그래서 그 아까운 기량을 올림픽에 다시 선 보일 기회를 갖지 못했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었겠는가.

그러나 안 선수가 태극기를 달고 뛰지 못한 아쉬움을 소치의 우리 선수들에 대한 비난으로 몰아가서는 안 된다. 안현수와 같은 희생양을 또다시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한국 빙상의 앞날을 위해 구조적 난맥상은 반드시 뿌리 뽑혀야 하지만 바늘구멍보다 더 어려운 대표팀 선발전을 뚫고 태극마크를 단 우리 선수들이 `안현수의 그림자’에 가려 사기를 잃고 실의에 빠진다면 제2의 안현수, 제3의 안현수가 다시 나오지 말라는 법도 없다. 더욱이 다음 동계올림픽은 평창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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