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淸河칼럼] “安寧하세요”와 “福 많이 받으세요”

박완규 주필

박완규250우리말로 하는 공식적인 인삿말은 “안녕하십니까”다. 낯선 사람이건 아는 사이건 예의를 차려야 할 사이에서는 가장 무난한 첫마디다.

하도 외침에 시달리고 변화무쌍한 역사를 살아온 민족이어서 이런 슬픈 인삿말이 생겨났다는 설이 있기는 하지만, 이야말로 ‘자학사관’이다. 그저, ‘반갑습니다’ 또는 ‘잘 지내셨습니까’ 정도의 의미를 담아 쓰던 말이 예절어로 굳어졌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여러 언어권의 인삿말은 대체로 관심형과 기원형으로 나눌 수 있다. ‘하우 아 유?’(영어), ‘니 하우마?’(중국어), ‘비 게테스 이넨 지?’(독일어), ‘꼬망 딸레 부?’(프랑스어) 등등이 관심형 질문이다. 모두 ‘요즘 어떻게 지내시느냐’고 가벼운 관심을 나타내는 인사다.

일본어 인사 ‘오하요 고자이마쓰’의 경우 의문문은 아니지만, 어원을 따지자면 ‘빨리 나와 계시는군요’라는 뜻이므로, 역시 상대방에 대한 관심을 표하는 인사로 분류할만하다. 기원형은 궁금증을 드러내는 대신 상대를 향한 축원의 의미를 띠는 인사다.

아랍권의 ‘앗 쌀람 알라이쿰!(평화가 당신에게!)’, 그에 대한 답례인 ‘알라이 쿰 쌀람!(당신에게도 평화를!), ‘평화 평강 정의 질서 조화’라는 뜻인 유대인들의 인사 ‘샬롬!’이 대표적인 기원형이다.

‘나의 신이 당신의 신에게 문안드린다’는 뜻인 인도의 ‘나마스떼!’도 기원의 의미가 강하다. “안녕하십니까”의 경우 관심형 질문이라고 보아야겠지만, ‘안녕하시기를 바란다’는 어감도 상당히 들어가 있는 듯하다.

대구에 있는 한 중학교가 뇌성마비 친구의 입학을 계기로 모두가 서로를 아끼고 돕는 마음을 북돋기 위해 “안녕하십니까”라는 인삿말을 “사랑합니다”로 바꾼 것이 널리 퍼지면서 이제 꽤 많은 중고등학교에서 “사랑합니다”라는 인사말을 쓰고 있다고 한다.

굳이 따져보자면 고백형 인삿말이라고 해야 할 “사랑합니다”가 한국인의 정서엔 다소 ‘닭살’스러운데가 없지않지만, 그 아름다운 뜻만은 더 널리널리 퍼져가기를 바란다.

요즘 정초라서 그런지 어딜 가나 ‘새해 복 많이 받아라’는 인사다. 어디서 어떻게 받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복의 가짓수가 많은 것 만은 확실하다.

부자, 장수, 강녕(康寧) 등 5복(五福)을 비롯해 불교에서 이르는 7복(七福)과 천주교에서 일컫는 칠대복(七大福), 조선시대 시인 조수삼(趙秀三)이 누렸다는 10복(十福)쯤은 많은 게 아니다. 천복(千福)이라는 말은 없어도 백복(百福)에다 만복(萬福)이라는 말도 있다.

하긴 번뇌도 팔만사천 가지나 된다니까 복도 만 가지쯤은 돼야 하리라. 남편 복, 마누라 복 등 인복과 돈복, 일복 등 숱한 복도 복이지만 복스런 얼굴에 돋은 복점과 복사마귀까지 있고 배불뚝이도 ‘복배’라 부른다.

목젖이 보이도록 입을 딱딱 벌리고 먹는 복쌈에다 무탈 바가지에 따라 마시는 복주(福酒)에 복 글자가 새겨진 복떡(福喜餠)도 먹고 복돼지, 복상어, 복수초(福壽草), 복권, 복표, 복채, 복전(福田), 복지(福地·福池)도 있고….

기독교에서 말하는 복음, 복 사운드, 복 메아리가 있다면 불교의 염불에선 ‘복취해무량(福聚海無量)’이라는 말도 들린다. 복이 모여 바다 같다는 뜻이다.

복지(福祉), 복리 등 복자 돌림 어휘와 고유명사 또한 숱하다. 일본에선 복이 많은 모양을 복자가 두 개 겹친 ‘福福(후쿠후쿠)’라 하지만 가장 행복한 이름은 김만복(金萬福)이요, 가장 복 많았던 사람은 중국 남명(南明)의 초대 왕 ‘복왕(福王)’이 아닐까 싶다. 하기사 중국엔 ‘福’씨 성까지 있음에야.

복이 가출을 하지 못하게 빨간 종이에 ‘福’자를 써 거꾸로 붙이는 중국인도 ‘복은 겹쳐 오지 않고 화는 홀로 오지 않는다(福不雙至 禍不單行)’고 조심하며 무리한 복 사냥은 하지 않는다. 정초 인사도 ‘복 많이 받아라’ 보다는 ‘부자가 되라(恭喜發財)’가 많다. 닭띠 해 액땜으로 빨간 내복을 입은 일본인들도 새해 인사에 ‘복’자는 들먹이지 않는다.

복이란 어디서 어떻게 받아야 하는 것인가. 꼭 알아야 할 말은 ‘복인복과(福因福果)’다. 복을 받을 원인을 만들어야 복을 받는다. 복 받을 사람보다 죄 받는 사람이 점점 더 늘어나는 태권도계가 안타까워 넋두리 한번 해 보았음에야.

 

댓글 쓰기

Photo News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