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태권도의 일그러진 자화상

백순기 / 매일경제 스포츠레저부장



   
 

주먹과 발로 상대를 제압하는 태권도. 정확한 유래는 불분명하지만 대체로 삼국시대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고구려 고분인 무용총 벽화에서 두 남자가 격투 자세로 마주보고 선 장면이 마치 태권도의 기본 동작인 품새를 연상시킨다. 통일신라시대에 완성된 경주 석굴암의 금강역사상은 태권도의 막기 자세와 유사하다.

태권도는 일제 시대 때에는 일본의 가라데로 둔갑하는 비운을 맞기도 했지만 해방과 함께 ’지덕체’를 겸비한 고유무술의 위치를 되찾았다. 태권도의 발전은 두 명의 대통령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당수와 공수, 태수도 등으로 불렸던 태권도가 지금의 이름을 갖게 된 것은 고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태권도’라는 명칭 인가를 받으면서부터다.

고 박정희 대통령은 1971년 ’국기 태권도’라는 휘호를 내려 국기 논쟁에 마침표를 찍었다. 태권도는 1963년부터 전국체육대회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고, 1972년 세계 태권도의 본산인 국기원이 문을 열고 1973년 세계태권도 연맹이 창설되면서 대한민국이 종주국으로 인정받게 된다. 1992년ㆍ1996년 올림픽 시범 종목을 거쳐 2000년 시드니올림픽대회에서 정식종목으로 채택되면서 지금은 8000만명의 세계인이 즐기는 대중 스포츠로 자리매김했다.

이런 태권도가 최근 한꺼번에 터진 악재로 몸살을 앓고 있다. 태권도 관련 3개 단체 모두의 내부갈등에서 비롯된 ’시한폭탄’이 터지면서다.

얼마 전 고교생 아들이 심판의 편파판정 희생양이 된 억울함을 호소하며 태권도장 관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 이후 2004 아테네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자 현역 국회의원인 문대성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도 "나도 현역시절 편파판정을 당했다"고 토로했다.

대한태권도협회가 뒤늦게 편파 판정으로 물의를 일으킨 심판을 제명하기로 결정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사실 태권도의 편파판정 시비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의 오심 시비는 태권도의 올림픽 종목 퇴출을 거론할 만큼 큰 파장을 낳았다.

’태권도 성지’인 국기원도 아수라장이 됐다. 지난달 30일 임시이사회를 열고 이사장 선출을 논의하려 했지만 태권도 관련 시민단체 회원들이 회의실로 난입해 오물을 투척하는 바람에 회의조차 열지 못했다. 이사장을 선출하는 과정에서 집안싸움으로 파행을 겪고 있는 것이다. 이달 11일 이사장 선출 문제를 다시 논의할 예정이지만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비정상적인 운영이 쉽게 해결되지 않을 전망이다.

올해로 창립 40주년을 맞은 세계태권도연맹도 뒤숭숭하긴 마찬가지다. 7월 열리는 총재 선거에서 한국인끼리 맞붙기 때문이다. 조정원 총재의 4선 도전에 집권당 사무총장인 홍문종 의원이 도전장을 던진 것. 출마 동기가 어떻든 단일화하지 못하면 자칫 집안싸움이라는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아야 할 판이다.

태권도계의 내부 갈등은 태권도의 세계화에 고스란히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태권도가 올림픽에서 25개 핵심종목으로 선정됐지만 2020년 이후에는 다시 심사를 받아야 한다. 이번에 살아남았다고 해서 안심을 할 수 없다는 얘기다. 사실 태권도는 K팝과 드라마로 발전한 한류 문화의 원조격이다.

1960년대부터 전 세계로 나가서 태권도를 보급한 한국인 사범들이 태권도뿐만 아니라 한국을 알렸다. 국기 태권도의 집안 다툼으로 인한 폐해는 경기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인 전체가 짊어져야 할 짐이나 다름없다. 이제라도 태권도계가 힘을 합쳐 만연한 병폐를 뿌리 뽑아야 위기의 태권도도 살릴 수 있다.
 

댓글 쓰기

Photo News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