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테르 받고 정신 번쩍…레슬링 기사회생 하나?



   
 

“뭐 해!” “잡아! 잡아!”

시간이 흘러갈수록 양팀 코치의 고함이 커졌다. 선수의 두 어깨는 위아래로 크게 흔들리며 거친 숨을 뿜어냈다. 이미 체력은 고갈됐다. 그러나 상대도 마찬가지였다. 코치의 목은 쉬어 바람 소리만 나올 뿐이었다. 전광판은 종료 10초 전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때 삼성생명의 이재성이 태클을 걸어오던 광주남구청 김관욱의 공격을 피하더니 오히려 허리를 잡고 뒤집는다. 기술은 성공했다. 되잡기와 옆굴리기로 3점을 따낸 이재성은 4-6의 열세를 벗어나 극적인 막판 뒤집기로 세계대회 출전권을 따냈다.

이런 역전 드라마를 만들기까지 레슬링은 올림픽 퇴출 위기의 시련을 겪어야 했다. ‘관중들이 보기에 이해하기 어렵고 지루하다’는 이유로 올해 초 2020 올림픽 25개 핵심종목에서 퇴출된 레슬링은 재미있는 경기를 위해 규칙을 바꾸는 등의 노력을 기울였다.

그리고 지난달 다시 가까스로 정식 종목 후보가 돼 9월 최종 결정을 앞두고 있다. 4일 서울시 중구 흥인동 충무아트홀 대체육관에서 열린 2013 국제레슬링연맹 세계대회 국가대표 최종선발전은 새로운 룰이 적용된 국내 첫 공식 경기였다.

핵심적인 내용은 기존의 세트제(3세트 2선승제)에서 총점제(3분 2회전)로 바뀐 것이다. 2005년 도입된 세트제에서는 두 세트만 이기면 되니 1점을 내고 수비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또 한 세트가 2분밖에 되지 않아 힘겨루기만 하다가 끝나곤 했다. 레슬링의 화려한 기술들은 종적을 감췄다.

하지만 전·후반 3분씩, 6분 동안 하는 새 방식은 더 많은 점수를 따낸 선수가 승리하는 총점제여서 1점이라도 더 따기 위해 끊임없이 기술을 시도한다. 공격적인 레슬링을 유도한 것이다.

이날 경기에서 룰 개정의 효과는 뚜렷했다. 이전 대회보다 선수들이 더 공격적인 전략을 들고나왔고 매 경기 많은 점수가 나왔다. 규칙 개정 전인 4월 열린 2차 선발전 남자 그레코로만형 38경기(기권 경기 제외)에서는 두 선수의 점수를 합쳐도 경기당 평균 2.2점에 그쳤다. 이날은 한 경기 평균 6.8점이 나왔다. 자유형은 경기당 평균 점수가 10점 가까이 됐다.

또한 지고 있더라도 마지막 순간까지 역전의 희망이 있기에 경기 후반으로 갈수록 경기는 더 박진감이 넘쳤다. 경기를 지켜본 안한봉 그레코로만형 국가대표팀 감독은 “이게 진짜 레슬링”이라고 말했다. 안 감독은 “과거(2분 3세트제)에는 한 세트의 시간이 짧아 힘 한번 쓰면 끝났다. 레슬링보다는 머리를 잘 쓰는 사람이 이겼다. 지금은 6분 동안 최선을 다해서 싸운 진짜 승자를 위한 룰”이라고 평가했다.

공격적인 레슬링을 만들기 위해 수세적인 선수에게 벌칙을 주는 패시브 규정도 수정했다. 1차 주의, 2차 경고(벌점 1점), 3차 상대의 폴승을 선언하는 이전 규칙과 달리 새 방식에서는 2차 경고 뒤 자유형의 경우 30초 안에 경고를 받은 선수가 1점을 내지 못하면 상대 선수가 1점을 얻고, 그레코로만형은 상대 선수가 파테르 자세로 경기할지 선택할 수 있다. 3번째부터 상대 선수에게 1점과 자세선택권을 주고 4번째에서 폴승을 선언한다. 수세적인 경기를 한 선수가 공격적으로 나서도록 유도를 한 것이다.

벌칙보다 기술 점수를 우선하도록 한 것도 공격 레슬링을 유도했다. 전에는 동점일 경우 벌칙을 적게 받은 선수가 이기도록 돼 있었다. 똑같이 1점씩을 얻어도 기술로 1점을 얻은 선수보다 상대 반칙으로 1점을 얻은 선수가 유리했다.

지금은 그 반대다. 그래서 상대 반칙을 유도하기보다는 원 안에서 기술을 걸어서 점수를 따내려고 한다. 이번 대회에서 유독 화려한 기술이 많이 나온 이유다. 이날 경기를 감독한 이운채 심판은 “확실히 점수가 많이 나오고 재밌어졌다. 바뀐 룰에 선수와 코치가 적응하면 더 다양한 공격 전술이 나올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번 대회에서는 남자 자유형 84㎏의 이재성과 그레코로만형 55㎏급 최규진(조폐공사)을 비롯해 21명의 국가대표가 선발됐다. 이들은 태극마크를 달고 9월 헝가리에서 열리는 세계대회(세계선수권)에 출전한다. 99년 김인섭과 손상필 이후 14년 만의 금메달이 목표다.

바뀐 룰은 오히려 한국에 유리할 것으로 보인다. 그레코로만형 74㎏급으로 출전하는 2012년 런던올림픽 금메달리스트 김현우(삼성생명)는 “유럽 선수들이 확실히 힘과 기술은 뛰어나지만 지구력에서는 약하다. 바뀐 룰에서는 경기 후반까지 쉬지 않고 공격할 수 있는 체력이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체력이 뛰어난 한국 선수들이 더 유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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