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아침149> 헌책방 단상
누군가 자신의 삶의 여러 대목 중에 밑줄 그어줬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할 때는 헌책방 골목으로 향하는 건 어떨까. 헌책은 그 책을 스쳐간 많은 사람들의 체온과 자취가 남아 있어 살가움으로 다가온다.
헌책방 골목에 들어서면 눈길이 가닿기 전에 헌책방 고유의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책방 앞에서 언덕을 이룬 책들이 일광욕을 즐기면서 해묵은 먼지를 풀풀 날리고 있다.
헌책방에 들어서면 독한 먼지 냄새가 코를 찌른다. 공기 중에 책벌레가 스멀스멀 기어 다니는 느낌이다. 거대한 고래 배 속에 들어온 느낌이랄까. 수북이 쌓여 있는 책들이 뼈대를 이룬 가운데 수많은 활자들이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다.
귀신에게 홀린 듯 쭈뼛하니 서 있다가 여러 사람 손길을 거쳐 나에게 도달한 책에서 정지된 시간을 확인하곤 멈춘 시간을 돌리기 시작한다. 쉽게 근접하기 꺼려지는 새 책과는 달리 누렇게 바랜 헌책 속에선 삶의 구절구절이 어렵지 않게 읽힌다.
일반 서점에서 책들의 생명력은 터무니없게 짧다. 정보화시대 이르러 책들은 끊임없이 출판되어 서점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잘 팔리지 않는 책들은 한 달도 버티지 못하고 후미진 창고로 밀려나거나 고물상으로 직행한다. 하지만 헌책방에서 책들의 생명력은 놀랍다.
층층이 쌓여 있는 책들을 더듬다 보면 여러 세대에 걸쳐 기상천외한 사건들을 목격하게 된다. 우리가 살아온 시대가 총망라되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헌책방의 책들은 타임머신이기도 하고 타임캡슐이기도 하다.
헌책방 책들이 집약하고 있는 격변의 세월 앞에서 우리는 시대를 관조하게 되고, 성찰에 이르기도 한다. 다양한 시대, 여러 사람들의 얽히고설킨 인생을 더듬고 싶다면 헌책방으로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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