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아침100> 단풍예찬
낙엽에 허사(虛辭)와 조사(弔辭)가 어울린다면 단풍엔 실사(實辭)와 찬사(讚辭)가 제격이다.
‘흰 구름 푸른 내는 골골이 잠겼는데 / 추상(秋霜)에 물든 단풍 / 봄꽃도곤(봄꽃보다) 좋아라 / 천공(天公→하느님)이 나를 위하여 / 뫼꽃(山色)을 꾸며내도다.’
‘청구영언’의 가인(歌人) 김천택(金天澤)의 자아도취식 단풍 찬사도 좋고 ‘봄내 여름내 태양의 양광을 흠뻑 빨아들인 나뭇잎들이 가을철 맑은 공기의 분광(分光)작용으로 여태껏 저축해 두었던 태양 빛을 프리즘으로 갈라 영롱하게 발산하는 것’이라는 왕년의 명 칼럼니스트 심연섭(沈鍊燮) 선배의 분석적 단풍 찬사도 찬사는 찬사다.
손바닥 모양의 새빨간 아기단풍을 가리켜 ‘청잣빛 하늘 끝을 잡으려는 천진한 몸부림’이라 한 것이나 ‘하늘을 향해 만세를 부르는 새빨간 손끝’이라고 한 예찬은 또 어떤가.
짐짓 시인, 문객(文客)의 예찬이 아니더라도 회회청(回回靑) 청잣빛 하늘을 드높이 인 채 울긋불긋 고이 채색된 단풍산은 어느 누가 스쳐 지나가도 예찬의 형용사는 모자랄 게다.
이 땅의 단풍은 9월 하순의 설악을 시발로 오대(五臺)와 치악을 거쳐 속리와 내장산으로 내려간다. 그러나 북으로 뻗어 오르면 다르다. 그 이름부터가 단풍산을 뜻하는 풍악(楓嶽)과 단풍덕산(丹楓德山)이 버티고 있지 않은가.
풍악은 너무도 유명한 가을 금강산이고 단풍덕산은 평안북도 창성군과 벽동군에 뻗쳐 있는 해발 1천159m의 명산이다.
‘가을이라 가을 바람 솔솔 불어오니 / 푸른 잎은 붉은 치마 갈아 입고서…’ ‘붉은 치마’뿐 아니라 저고리까지 붉게 갈아입은 산, 산, 산…. 단풍의 절정에다 강원 산간엔 첫눈까지 내렸다.
새빨갛고 샛노란 잎새에 하얗게 내려앉는 눈꽃이라니! 이 풍진 세상, 거칠대로 거칠어진 심성들이 단풍처럼 영롱하게 채색되고 저 엄숙하고 위대한 대자연 곁에 잠시라도 겸허해질 수 있다면 얼마나 다행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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