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淸河칼럼>침잠(沈潛)으로 여름나기



   
 

찝찝지리한 장마가 끝나자마자 연일 35℃를 넘나드는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굉음을 내는 낡은 에어컨이나마 가동되는 사무실이, 딸랑 선풍기 한대로 폭염에 대항해야 하는 집보다는 훨씬 시원해서 주말과 휴일에도 출근하는 과잉충성심을 보이는 자신을 보며, 우리네 동병상련의 여름나기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해마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무더위지만, 올해는 유래없는 찜통더위가 9월까지 이어진다니 아찔할 지경이다.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무기징역형을 받고 20년간 복역한 신영복은 감옥에서 보내는 편지를 통해 “여름 징역은 자기의 바로 옆사람을 증오하게 합니다. 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 하는 좁은 잠자리는 옆사람을 단지 37℃의 열덩어리로만 느끼게 합니다. 이것은 옆사람의 체온으로 추위를 이겨 나가는 겨울철의 원시적인 우정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형벌 중의 형벌입니다”라고 했다.

‘없는 사람이 살기는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는 통설을 뒤집는 감옥 경험담이라고나 할까. 기실 과거의 겨울나기가 힘들었던 건 추위보다는 배고픔이고, 동사(凍死)의 대부분은 아사(餓死)였다는 사실이 더 힘들고 불편한 진실이었을 터이다.

‘하로동선(夏爐冬扇)’이라 했던가. 여름날의 화로나 한겨울의 부채가 무슨 소용이 있으랴마는, 선가(禪家)의 화두로 면면이 이어지며 더위 날리는 법을 역설한다. 여름에 난로를 껴안는 이열치열의 원리는, 복(伏)날 음식으로 차가워진 속을 덥히는 삼계탕이나 보신탕으로 안팎의 균형을 잡게 한 과학적 섭생에서부터 계곡에서 탁족(濯足)하기에 이르기까지, 더위와 적극 대면하거나 계절에 순응해 온 우리 조상의 지혜를 새삼 일깨운다.

‘효과적인 여름나기가 수험생의 미래를 좌우한다’는 강남 학원가의 구호가 우리의 가슴을 아리게 한다. 엄동(嚴冬)보다 더 시린 수험의 치열함이 살인적인(?) 더위를 날려 보내고도 남음에야. 삼복더위에도 신발끈 졸라매는 대선주자들의 슬로건도 독해·감식하고, 런던 올림픽에도 환호하며 머리와 마음이나마 침잠(沈潛)토록 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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