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木食四季] ⑨ 일곱 번째 절기 입하(入夏)

청풍(淸風) 이기백 / 발행인

   
 

2012년 5월 5일 (음력 임진년 삼월 열닷새)

24절기 중 일곱번째 절기인 입하(入夏)에 들었다. 올해 양력으로 5월 5일 무렵이고 음력으로 3월 중순경에 들었으며, 태양의 황경(黃經)이 45도에 이르렀을 때이다.

입하(立夏)는 곡우(穀雨)와 소만(小滿) 사이에 들어 여름이 시작됨을 알리는 절후이다. ‘보리가 익을 무렵의 서늘한 날씨’라는 뜻으로 맥량(麥凉), 맥추(麥秋)라고도 하며, ‘초여름’이란 뜻으로 맹하(孟夏), 초하(初夏), 괴하(槐夏), 유하(維夏)라고도 부른다.

옛사람들은 입하 15일간을 5일씩 3후(候)로 세분하여, ① 청개구리가 울고, ② 지렁이가 땅에서 나오며, ③ 왕과(王瓜: 쥐참외)가 나온다고 하였다.

이때가 되면 봄은 완전히 퇴색하고 산과 들에는 신록이 일기 시작하며 개구리 우는 소리가 들린다. 또 마당에는 지렁이들이 꿈틀거리고, 밭에는 참외꽃이 피기 시작한다.

그리고 묘판에는 볍씨의 싹이 터 모가 한창 자라고, 밭의 보리이삭들이 패기 시작한다. 집안에서는 부인들이 누에치기에 한창이고, 논밭에는 해충도 많아지고 잡초가 자라서 풀뽑기에 부산해진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흔했던 누에씨를 조심조심 키우던 때가 기억난다. 그때는 속옷포장재인(지금기억으로는 백양메리야스) 종이상자에 깨알보다 작은 누에씨를 받아서는 장롱 위에 얹어두고 뽕잎을 아주 잘게 썰어서 먹이면 몸집이 점점 불어나 넓은 누에 채반으로 옮겨가며 키웠다.

예전 재래종 벼로 이모작을 하던 시절에는 입하 무렵에 한창 못자리를 하므로 바람이 불면 씨나락이 몰리게 되는데, 이때 못자리 물을 빼서 피해를 방지하라는 뜻으로 “입하 바람에 씨나락 몰린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올해에는 정부에서 지급한 씨나락이 움이 트지 않아 문제가 생겼다고 한다. 한 때 통일벼니 뭐니 해서 기존의 재래종 벼 품종들을 몽땅 없애버리더니 이젠 아예 농사도 못 짓게 만들려나 보다.

겨울에 눈이 많이 오는 해는 목화가 풍년 든다는 뜻으로 “입하 일진이 털 있는 짐승 날이면 그해 목화가 풍년 든다.”는 말도 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닭의 날이다. 벼슬도 빨갛고 꼬리도 푸성지게 나풀대는 씨장닭이 연상된다.

그렇다면 올해는 목화가 풍년이 되겠다. 예전 먹을게 귀하던 때는 목화가 망울 지으면 몰래 따서는 하얀 속살을 까먹곤 했다. 다래처럼 달짝지근한 목하를 따먹다가 들키면 어른들께 한소리 듣곤했다.

입하가 다가오면 모심기가 시작되므로 농가에서는 들로 써레를 싣고 나온다는 뜻으로 “입하물에 써레 싣고 나온다.”라는 말도 있다.

재래종을 심던 시절에는 입하 무렵에 물을 잡으면, 근 한 달 동안을 가두어 두기 때문에 비료분의 손실이 많아 농사가 잘 안 된다는 뜻으로 “입하에 물 잡으면 보습에 개똥을 발라 갈아도 안 된다.”라는 말도 있다.

잎새를 띄운 나뭇잎은 윤기를 더하고 그렇지 않은 나무들은 마지막으로 싹을 띄워 푸르름의 여름으로 넘어가고자 몸부림치는 때가 오늘부터이다.

이때 마을에는 한두 그루쯤 있는 이팝나무에서 흰 꽃이 핀다. 꽃이 마치 흰 쌀밥 같이 온 나뭇가지를 뒤덮으며 피는데 꽃이 한꺼번에 잘 피면 그해 풍년이 들고, 꽃이 신통치 않으면 흉년이 들 징조라고 한다.

그러니까 우리 조상들은 쌀밥나무라 부른 이팝나무를 통해 그해의 풍흉을 점쳤던 것입니다. 그리고 역시 계절의 여왕은 이때입니다.

산에는 뻐꾸기 울어 대고 들에는 온갖 나물들이 지천으로 돋아나 입맛을 돋군다. 녹음이 무성해지고 농가에서는 못자리 돌보기 등의 농사일이 한창일 때이다.

"입하가 지나면 여름"이라 했지만 산간지방에서는 우박이 내려 담배, 깻잎, 고추 등 어린 모종이 해를 입기도 하고 또 높새바람이 불어 농작물의 잎을 바짝 마르게 하는 해를 입히기도 했다.

만상이 무성한 계절로 치닫는 입하에 들어서면서 머지않아 담장을 감고 도는 넝쿨장미의 환한 웃음이 기다려진다.
 

댓글 쓰기

Photo News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