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가족은 손님 아닌 이웃이다

우기종 / 통계청장



   
▲ 우기종 통계청장

조선시대에도 결혼 이민자들이 있었을까? 단일민족의 순수성이라는 개념과 조선 후기 쇄국(鎖國)의 이미지만 떠오르는 과거를 생각하면 상상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조선왕조실록’을 보라. 중국·일본인뿐 아니라 만주 지역의 여진족과 동남아시아인, 심지어는 이슬람교도까지도 조선에 귀화해 생활했던 기록들이 남아 있다. 이들은 조선의 여인들과 결혼해 정착할 수 있었다. 세종대왕 때에는 외국인들의 귀화를 포용하기 위해 의복과 양식, 주택과 노비 등을 하사해 생활 안정을 유도하기도 했다. 이들은 과거(科擧)에도 응시할 수 있었으며 시험을 통해 벼슬을 받았다. 그 중에는 고위관직에 오른 귀화인들도 기록에 남아 있다.

당시에 조선이 귀화를 받아들인 이유로는, 무력충돌을 방지하고 이색적인 문물과 최신 기술의 수용이라는 측면 외에 백성의 숫자로 국력을 가늠하던 시대에 인구를 늘려 국력을 키우려는 의도도 있지 않았을까 짐작된다. 지난 6월23일 오후 6시36분 대한민국 인구가 5000만을 넘어섰다. 어려워 보이기만 했던 5000만 명 돌파는 출산율의 소폭 반등과 더불어 외국인의 유입이 큰 역할을 했다고 분석된다. 정부의 지속적인 외국인 근로자 정책과 다문화가족 지원 사업에 힘입은 바 크다.

대한민국은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이 140여만 명에 이르고, 결혼하는 10쌍 가운데 1쌍은 국제결혼을 하는 다문화 사회로 접어들었다. 다문화가족이라는 용어가 더 이상 낯설지 않고 이들 가족의 모습과 생활도 쉽게 접할 수 있다. 하지만 아직도 다문화가족에 대한 불편한 시선이 있고, 이들이 한국민의 일원으로서 권리와 기회를 충분히 보장받고 있지 못한다면 이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우리의 당면 과제다.

국내 거주 외국인 가운데서도 상대적으로 불편한 시선을 더 많이 감당해야 하는 계층이 결혼이주 여성들이다. 한국인 배우자와의 문제도 있다. 서로 간에 충분한 이해 부족으로 결혼생활의 어려움을 겪으며 ‘내 편’이 돼야 할 배우자가 ‘남의 편’이 되는 일도 많기 때문이다. 더불어 우리말과 한글이 익숙지 않아 배우자를 포함한 가족들과의 의사소통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의사소통의 문제는 아이들 교육에도 영향을 미쳐 자녀들의 언어발달 및 학습장애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에 따라 정부는 국정운영 기조로 누구나 공평하게 기회를 제공받고 동등한 위치에서 경쟁할 수 있는 ‘공정사회’를 제시해 왔다. 다문화가족도 예외는 아니다. 오히려 이들에게는 우리와 같은 출발선상에 동등하게 설 수 있을 때까지 지원과 배려가 필요하다. 다문화가족을 동정하는 시혜 차원의 접근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우리와 함께 대한민국의 미래를 만들어가는 주역으로서 자리잡을 수 있도록 실질적인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통계청은 다문화가족에 대한 정책 수립 및 지원에 필요한 통계 작성을 위해 여성가족부와 공동으로 ‘2012 전국 다문화가족 실태조사’를 10일부터 30일까지 계속한다. 표본으로 선정된 전국 2만6089개의 다문화가구를 대상으로 한 이번 조사를 통해 가족의 구성 및 취업 상황, 경제 수준, 결혼 생활 및 자녀 양육, 건강 및 보건의료 등 다문화가족의 실태를 처음으로 체계적이고 종합적으로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구한말 조선을 방문한 독일인 신문기자 지그프리트 겐테가 남긴 기록에는 조선인은 ‘원래 매우 선량(善良)하고 관대(寬大)하며 손님을 후대(厚待)하는 민족’이라고 쓰여 있다. 우리가 다문화 사회를 살아가는 데 지금 꼭 필요한 것은 다문화가족을 ‘손님으로서 후대’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해야 할 이웃, 대한민국의 운명공동체라는 새로운 가치로서의 발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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